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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없는 역사는 독백에 불과하다

입력
2016.08.12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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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그래프턴은 근대 초 유럽 고전을 샅샅이 훑어 각주의 역사를 복원해냈다. 프린스턴대 홈페이지
앤서니 그래프턴은 근대 초 유럽 고전을 샅샅이 훑어 각주의 역사를 복원해냈다. 프린스턴대 홈페이지

각주의 역사

앤서니 그래프턴 지음ㆍ김지혜 옮김

테오리아 발행ㆍ320쪽ㆍ1만5,000원

각주는 자주 주변부로 간주된다. ‘각주의 역사’는 이런 앙상블을 주연으로 길어 올린 대중적 학술서다. 저자는 영미 역사학계에서 “학자 중의 학자”로 불리는 역사학자 앤서티 그래프턴이다.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석좌교수인 그는 유럽의 여러 기록보관소와 도서관의 자료를 망라해 연구하기 까다롭기로 소문난 15~18세기 지성사 속 각주의 역할을 다뤘다.

그래프턴에 의해 비로소 시도되긴 했지만, 각주의 역사는 근대 학문 전개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에 따르면 역사학자의 주장을 증명, 검증, 지지하는 장치로서 각주는 역사학을 과학으로 만든다. 역사적 진실을 주장하려는 역사학자일수록 각주에 공을 들이는 것은 물론이다. 각주가 없으면 학자의 주장에 찬사나 항의만 가능할 뿐 검증도 반증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간 역사학계는 각주를 처음 쓴 학자를 19세기 역사학자 레오폴트 폰 랑케로 생각해왔지만, 그래프턴은 더 먼 시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랑케가 1824년 출판한 ‘라틴과 게르만의 여러 민족들의 역사’가 적극적으로 각주를 사용하긴 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이미 각주와 유사한 형식의 기술이 여러 형태의 글에서 코러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픽션에서 필자나 상황을 풍자하는 듯한 부연설명이 만연했다.

시간을 조금 더 올라가면 프랑스 법률가 오귀스트 드 투이(1544~1607)가 당대 현대사를 다룬 책 첫 부분을 가편집 하자마자 유럽 전역의 학자들에게 보내 자신의 주장을 확인, 보완, 고증하게 한 뒤 이를 책에 함께 다루는 연구법을 적용했다. 1700년대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벨은 ‘역사 비평 사전’으로 심지어 각주에 대한 각주를 시도하기도 했다.

즉 각주가 17세기말 이미 탄생했고 18~19세기를 거치며 독자의 의구심을 해소하거나, 역사학자의 주장에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는 학문 도구로 지위를 획득했다는 설명이다. 역사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규율이 된 각주는 랑케 뿐 아니라 여러 세대의 역사가, 철학자 등 학자들이 관여해 만든 지성사의 집단창조물인 셈이다.

저자가 각주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리는데 공들인 까닭은 “역사가는 각주를 사용함으로써만 자신의 역사 서술을 독백이 아닌 대화로 만들 수 있고 학문적 논쟁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도 423개의 각주를 빌어 이번 책을 썼다.

각주를 비롯한 이견에 대한 검토가 없는 역사는 독백에 불과하다는 그의 지적은 21세기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 책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문제, 고대사 논쟁, 위안부 서술의 문제 등 역사에 대한 큰 관심에 훨씬 못 미치는 학문적 엄정성의 기준에 대한 인식에 경종을 울리길 바란다”고 썼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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