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여러 왕실에서는 국왕의 고령화에 따라 세대 교체가 속속 진행되고 있다. 다만 국민적 인기를 누린 현재 왕들에 비해 후대에 대한 지지는 높지 않으며, 경제불황, 민주적 가치의 확산에 따라 왕정 폐지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누구보다 관심을 모으는 국왕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다. 60년이 넘는 재위기간이나 구순을 맞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양위 의사가 없다. 엘리자베스 2세가 여전히 정정하고, 여왕직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을 보이고 있어 왕위 승계가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조차 없다. 다만 퇴위 시점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역시 79세로 고령인 노르웨이 하랄 5세, 75세인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 1973년 즉위한 스웨덴의 칼 구스타프 16세(70)도 유력한 왕위 교체 후보다.
하지만 왕가의 세대교체는 국민적 반감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왕정 존속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스페인 도시 60곳에서는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아들에게 왕권을 양위하는 데 반대하며 ‘군주제 폐지’ 시위가 벌어졌다. 왕실의 사치 행각과 20%가 넘는 실업률이 주요 원인이었다는 분석이다. 노르웨이에서도 2014년 야당이 왕정 폐지안을 의회에 상정했다가 간신히 부결됐다. 심지어 영국에서조차 “봉건시대인 군주제를 폐기하지 않는 한 진정한 근대국가가 될 수 없다”는 시민단체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왕실의 사치와 부정부패도 제 발등을 찍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스페인은 카를로스 전 국왕의 호화 사냥 등 재정 낭비와 크리스티나 공주의 탈세 혐의로 곤욕을 치렀다. 노르웨이 왕실은 지난해 예산이 2억3,222만 크로네(약 329억원)이라고 발표했지만, 지방 정부 등의 예산에 몰래 전가한 왕실의 요트 정비 및 해외 여행 경비 등을 모두 합치면 2배 가량인 4억6,000만 크로네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비난이 쏟아졌다. 영국에서는 2014년 왕세손 윌리엄과 케이트 미들턴 부부가 부엌을 수리하는 데 든 2억9,000만원을 포함해 켄싱턴궁 수리에 78억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도마에 올랐다.
물론 왕실은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 개혁에 애쓰고 있다. 영국 왕실은 92년 7,739만파운드(약1,100억원)에 달하던 왕실 운영비를 2014년 3,000만 파운드까지 줄였다. 덴마크 왕실은 지난 5월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손주 8명 중 프레데리크 왕세자의 아들 크리스티안 왕세손만 국가 연봉을 받게 하겠다고 밝혔다. 집권 여당에서 “이대로 가면 몇 세대 안에 수백명의 왕자와 공주가 연봉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유럽 왕실의 존속 방안에 대해 라르스 호브바케 소렌센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는 “국가를 통합하는 데 기여하고 국민의 기대치에 맞는 도덕성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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