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씨줄과 날줄로 엮인 주택가에 사는 동안 의문 하나가 풀렸다. 늘 설마하며 살았는데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다는 것을 실감한 것. 이사할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절대로 관심을 갖지 않는 집도 그들이 마지막까지 살았던 곳이다. 딱히 사람이 자살해 경찰이 시신을 수습해 간 집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고독사한 집으로 이사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내팽개친 살림살이와 다소곳이 놓여 있는 살림살이가 풍기는 기운은 다르고, 그런 것들이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끼친다고 나는 믿는다.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고독사한 사람들이 살아가던 마지막 모습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칙칙했다. 그들은 악을 쓰며 살다가 악을 쓸 힘마저 사라진 뒤 혼자 쓸쓸히 죽어갔다. 나는 그들을 보며 늙는 것에 공포를 가졌고, 그들로 인해 잘 늙어야 할 뿐 아니라 잘 죽어야 한다는 의지도 갖게 되었다. 인문학자인 고향 친구는 내게 “귀엽게 늙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축 늘어진 두 볼을 심술주머니처럼 실룩대며 불만에 찬 말만 내뱉는 노인이 되어서는 안 되고, 생글생글 웃는 귀여운 맛 넘치는 할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것. 우리가 이런 말을 하면 훨씬 연상인 사람들의 눈에서는 ‘새파랗게 젊은 것들이!’ 하는 노여움이 읽힌다. 그러면 나는 ‘이건 미리 적금을 드는 것과 같은 대화라구요!’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제대로 전달되는지 의문스럽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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