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둘째는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아이 시기에 출판사 창업을 감행했다. 맞벌이를 하다가 외벌이를 고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퍽이나 무모한 출발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 회사의 첫 책은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라는 여행 에세이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표지를 찬찬히 살펴보니 나도 모르게 김빠진 웃음이 터진다.

아, 제목부터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가? 페로몬이란 동물이 다른 개체를 유인할 때 분비하는 물질인데 ‘길에서도 페로몬이 나온다’는 비과학적인 주장을 하고 싶었던 걸까? 부제 또한 난해하다. ‘길의 감식가 노동효의 샛길 예찬’이다. 신생 출판사의 첫 책에 기억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잔뜩 멋을 부렸으니. ‘대한민국 샛길 여행 보고서’ 또는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행 에세이’ 등과 같이 독자 편의를 고려한 제목으로 갔어야 했다.

공급자 마인드에 충실하던 시절이었다. ‘책은 왜 있는지’ ‘독자들은 어떤 경로로 책을 사보게 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던 시절. 창업 초기의 충만한 객기가 응집된 첫 책이었다.

이내 여기에 기름을 붓는 일이 터졌다.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와 함께 준비했던 ‘정리 플래너’라는 번역서가 별다른 수고 없이 1만 부가 나가는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정리 전문가이자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 일주일에 하나씩 삶의 영역을 정리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책이었다. “사소한 일들을 소홀히 하면 엉망진창이 되지만, 사소한 일들만 잘 챙겨도 아름다움은 창조된다”는 저자의 머리말부터 신선했다. 이후 미니멀라이프나 정리붐이 생겨났고 정리전문가라는 직업도 생겨난 걸 보면 한 발 앞선 키워드 선점이 주효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땐 그런 분석보다 ‘아하, 책을 내면 1만 부는 팔 수 있구나’하는 막연한 자신감만 장착했다. 그리고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파울, 헛스윙의 연속이었고, 어쩌다 얻어 걸린 득점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허니문이 끝나고 생활전선이 시작된 것이다.

한 책 한 책 어렵게 종수를 쌓아오면서, 나의 출판 재능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서 7년이 흘렀다. 내가 과연 책을 만들 자격이 있는 걸까 회의가 들 때마다 독자들이 온라인에 올려주는 감상평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물론 별 한 개짜리 혹평도 있지만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는 말처럼 기꺼이 감내할 만했다. 지금은 늘, 조심스럽다. 과연 저자와 출판사가 준비한 상차림을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사랑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도 늘 움직이는 존재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결혼의 완성은 아이라고 했듯 책은 독자들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완성된다는 걸 배우고 있는 중이다.

출발부터 즉흥적이었으니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초심’ 같은 걸 언급하기엔 부끄럽다. 그래도 초심을 고백하고 나니 뭔가 새로운 의욕이 생긴다. 초심이 바닥이었으니 올라갈 일만 남았구나!

김명숙 나무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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