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새누리당이 11일 오후 국회에서 긴급 협의회를 열어 올해 7~9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여당 신임 지도부 오찬 회동에서“당과 잘 협의해 조만간 방안을 국민에게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 후 반나절도 안 돼 이뤄진 일이다. 2,200만 가구가 혜택을 보고 요금 경감효과는 20% 가량이 될 것이라고 한다. 전기요금 누진제 근본적 개편은 TF를 구성해 중장기 대책으로 논의키로 했다.
이번 결정은 국민 원성에도 정부가 그간‘개편 불가’ 입장을 고수한 것에 비하면 일보진전이다. 이에 따라 한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누진제 개편 논란은 일단 진정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하지만 여론무마용 땜질식 미봉책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7~9월 3~4단계 요금을 통합해 3단계 요금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누진제를 일시 완화했었다. 내년에도 이런 식으로 국민을 탈진시킨 뒤 마지못해 완화해 주는 방식을 답습할 게 뻔하다.
누진제 근본적 개편을 중장기 과제로 넘길 것이 아니라 당장 논의에 돌입하는 것이 옳다.국민들은 그간 정부가 누진제를 고수하면서 밝힌 논리에 허점은 물론, 거짓말까지 하며 사안을 호도해 왔다는 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우선 국내 전력 사용량의 80% 이상을 사용하는 곳이 기업ㆍ상업용이고 가정용은 14%에 못 미친다. 그런데도 누진제는 가정용에만 적용된다. 누진제를 해소해 가정용 전력 소비량이 30%가 늘어나더라도 전체 전력 소비량이 늘어나는 것은 3% 수준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줄곧 누진제에 손을 대면 서민부담이 늘고 부자 감세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펴 왔다.
누진제가 폐지되면 전기사용이 늘어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협박’도 그렇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의 경우 여름철 가정의 최대 전력소비는 주로 가족이 가정에 모이는 오후 8~10시로, 최고 전력 수요 시간대(3시)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가정에서 쓰는 전기 때문에 블랙아웃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징벌적 성격의 누진제는 과감히 용도폐기 할 때가 됐다. 누진구간 6단계에 최대 11배의 격차가 나는 현행 누진제의 구간과 배수를 대폭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 에어컨 냉장고 TV 등이 가정의 필수품이 된 지금 부조리한 전력요금 체계로 국민을 핍박하지 말아야 한다. 시대 변화에 맞도록 전기요금 체계를 합리적으로 다듬어 국민 생활에 불편과 불만이 없도록 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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