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성주 배치 공식 발표 30일째인 11일 경북 성주군청 진입로. 평소 ‘참외하우스 관리기 안내’ 등 농사 현수막이 나붙던 이곳에는 ‘5만 군민 다 죽이는 사드배치 결사반대’, ‘성주농민 다 죽는다. 사드배치 웬말이냐’ 등 섬뜩한 내용의 플래카드 수십개가 나부끼고 있었다. 거리에는 왼쪽 가슴에 파란 나비리본을 단 주민들과 ‘사드배치 결사반대’라는 머리띠를 멘 삭발 군민도 간혹 눈에 띄었다.
지난 달 13일 성주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확정 발표난 이후 주민들은 생업을 접고 거리로 나섰고, 지자체도 그 흔한 여름축제 한 번 추진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드라는 거대 현안에 갇혀 의회도 개점휴업 상태다. 한 주민은 “성주 사드배치가 거론된 이후 모든 현안이 사드라는 블랙홀로 흡수됐다”며 “마을 전체가 멈춘 듯하다”고 전했다.
성주사드배치철회 투쟁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은 반쯤은 생업을 포기했다. 투쟁위 여성분과 단장인 하귀옥(46)씨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성주의 생존이 걸려있는 때인 만큼 사드배치 철회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주에서는 한 달 동안 칠순잔치와 동창회, 체육대회 등 친목과 화합을 다지는 행사의 함성이 뚝 끊겼다. 웃음소리도 덩달아 사라졌다. 성주 지역의 많은 행사를 유치하던 성주웨딩의 여상인(60) 대표는 “참외농사가 끝나는 이맘때면 예약이 넘쳐나 행사 장소가 부족해야 정상인데 올해는 결혼식 몇 건을 빼고는 아예 문의조차 없다”고 말했다.
지자체 행사도 개점휴업이다. 다음달 열릴 예정이던 ‘성주군 공설운동장 완공 기념 군민화합한마당’도 준비는커녕 취소됐다. 여름이면 넓은 들판에서 펼치던 메뚜기 잡기 체험행사도 중단되는 등 축제성 행사는 찾아볼 수 없다.
의회도 사드배치 철회 투쟁에 나서느라 집행부를 견제할 틈이 없다. 배재만 성주군의회 의장은 “지금은 사드를 제외한 현안이 성주에 없다시피 한 비상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내용의 임시회를 연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군청을 찾는 민원인도 뚝 끊겼다. 성주군청 민원실에 따르면 토지대장, 토지거래 관련 민원이 최근 한 달 동안 30% 이상 줄었다.
성주를 찾는 여름 피서객도 반토막 났다. 한여름이면 포천계곡 등 성주의 계곡 곳곳에는 무더위를 식히려는 관광객이 10만여명에 이르지만 올해는 5만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다만 정부를 비롯한 외부와의 소통 분위기는 감지되고 있다. 성주는 지난달 13일 사드배치지역으로 결정된 후 황교안 국무총리와 여야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최근 성주 내부에서 제3후보지도 거론되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11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성주를 방문하는 것에 대해 지역주민 대표들과 대화중이라고 밝혔다. 투쟁위 관계자도 “16, 17일쯤 국방부측과 만날 계획”이라고 시인했다. 투쟁위는 국방부가 성산포대를 제외한 염속산, 까치산 등 제3후보지를 제안한다면 검토해볼 의향을 앞서 표명했다. 다만 제3의 후보지를 국방부가 제안할지 주민들이 제안할 지 여부를 두고 의견차이를 좁힐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투쟁위는 이와는 별개로 15일 군민 815명이 참가하는 사드배치 철회 촉구 단체삭발식을 열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백악관 온라인 서명사이트인 ‘위더피플(We the People)’에 게시된 한국 사드배치 철회 청원이 지난 10일 10만명을 돌파, 백악관 측의 공식답변이 주목되고 있다.
성주=최홍국기자 hk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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