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키 플레이어’는 세계적인 공격수 김연경(28ㆍ터키 페르네바체)도, 한국 최고의 센터 양효진(26ㆍ현대건설)도 아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김희진(25ㆍIBK기업은행)을 꼽는다.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 주역인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은 “김희진이 대표팀의 다크호스가 돼 줘야 메달 획득이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었다. 팀 득점의 절반 가량을 책임지는 김연경에 대한 집중 견제를 분산시켜 줄 날개공격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희진이 1차전 일본전(5득점)과 2차전 러시아전(8득점)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기대 이하였다. 지난 시즌 프로배구 V리그에서 4년여 만에 나온 토종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무기력했다.
부진의 늪에 빠졌던 김희진이 아르헨티나전에서 드디어 날았다. 한국은 11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지뉴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여자배구 A조 3차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세트 스코어 3-0(25-18 25-20 25-23)으로 제압했다. 대회 2승(1패)을 거둔 한국은 A조 6개 팀 중 4팀이 얻는 8강행 티켓을 거의 손에 넣었다. 한국은 13일 올림픽 3연패를 노리는 홈팀 브라질(세계 2위)과 맞붙는다. 이 경기에서 패한다고 해도 14일 열리는 A조 최약체 카메룬(21위)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면 자력으로 8강행을 확정한다.
한국(9위)과 아르헨티나(12위)의 세계랭킹은 3계단 차이에 불과했지만 이날만큼은 한국이 경기를 압도했다. 김연경이 팀 최다 19점을 올렸고, 양효진도 12점으로 거들었지만 김희진의 활약상이 더 돋보였다. 김희진은 이날 52%의 높은 공격 성공률을 올리며 17득점했다. 컨디션이 회복되자 특기인 서브도 살아났다. 서브 득점 3개와 블로킹 득점 1개도 인상적이었다. 라이트로 나선 김희진은 전위와 후위를 가리지 않고 아르헨티나에 강스파이크를 퍼부었다. 아르헨티나의 추격이 거세던 3세트 후반엔 강력한 오픈 공격으로 추격 의지를 꺾었다.
지난 9일 러시아전 패인은 수비까지 담당하는 김연경을 받쳐줄 공격 옵션이 부족한 탓이 컸다. 센터 양효진만으론 부족했다. 상대가 김연경 수비에 집중한 틈을 김희진이 공략해야 했지만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많은 걱정을 했던 이정철 감독은 아르헨티나전 승리 후 “이제 김희진이 라이트 자리에 적응한 것 같다. 그 덕에 김연경과 양효진, 김희진의 공격 분포가 고르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희진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50%도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았다. 기록은 나쁘지 않았지만 내 플레이는 좋지 않았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이날 김희진의 활약으로 주포 김연경은 체력 부담을 많이 덜어냈다. 김연경은 일본전에서 30점, 러시아전에서 20점으로 팀 최다 득점을 찍었다. 특히 러시아전에서는 상대가 3명의 블로커들을 붙이는 등 집중 견제하자 힘에 부친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 아르헨티나전 완승으로 러시아전 패배 이후 자칫 가라앉을 수 있는 분위기도 반전시켰다. 이정철 감독은 “브라질이 강팀이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카메룬전도 안이하게 치를 생각은 없다”고 필승 의지를 불태웠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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