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은 이렇게 구부리고, 새끼손가락은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활 끝을 잡아요. 오케스트라 단원은 구부정하게 앉지 않아요. 어깨를 낮추고 뒤로 젖혀서 바이올린을 올리세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11일 오전 충남 공주 아트센터 고마. 한국어로 ‘코지마 루터’라고 쓴 이름표를 목에 건 강사가 얼굴에 웃음을 띠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코지마는 2010년부터 LA필하모닉의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 욜라(YOLA)에서 활동한 수석 강사. 한화청소년오케스트라 여름캠프 참가 차 한국을 찾은 그는 학생들과 드보르작 신세계 교향곡을 연습하다 ‘75번째 마디’에서 연주가 엇갈리자 악기 튜닝을 하듯 한 음 한 음 시범을 보인다.
같은 시각 같은 곡으로 옆 교실에서 클라리넷 수업을 한 욜라 강사 에밀리 쿠빗스키 역시 시범을 보이며 “이 부분은 혀끝으로 텅잉을 하지 말고 후후 불어 넘어가라”고 조언한다. 캠프에 참가한 윤주희(천안 성환중3)양은 “한국 선생님은 작품 전체를 설명하시는데 코지마는 음정을 위주로 한 음 한 음 짚어 알려주셨다”며 “악보에서 어렵거나 빠른 부분이 나오면 연습하기 싫어질 때가 있는데 캠프 참가 후 바이올린이 훨씬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강지민(청주 용성중1)군 역시 “에밀리는 한국 선생님보다 악보 음정을 자세하게 가르치신다. (그룹 레슨을 받은)4명 중 한 명이 연주를 틀려도 다시 연습해 진도가 더디게 나갔지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려면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엘시스테마에서 영감을 받아 2007년 시작한 욜라는 LA 다운타운 인근, 흑인과 히스패닉 거주지의 저소득층 6~17세의 학생에게 무상으로 악기를 제공하고, 음악교육을 진행한다. 이전에도 LA필하모닉 산하에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엘시스테마 출신의 세계적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오케스트라 내에 엘시스테마와 똑같은 프로그램 개설을 취임 조건으로 내걸며 대대적으로 개편됐다.
사우스LA, 이스트LA, 램버트지구 등 3곳에서 음악을 배우는 학생은 현재 600여명. “음악적 테크닉보다 인성을 키우는 데 집중”하지만 보이는 성과는 기대 이상이다. 맨 처음 설립된 사우스LA의 졸업생 20명이 모두 대학에 입학했고 그 중 절반이 음대에 진학했다. 주 4일 20시간의 집중적인 음악교육이 자연스럽게 음대 진학으로도 이어지는 셈인데 이에 대해 강사들은 “베네수엘라 엘시스테마, LA필의 욜라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으면 마약이나 술 등 나쁜 길에 빠지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늘려 가르치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소외계층 청소년을 대상으로 2014년 창단한 한화청소년오케스트라는 주 2회 2시간씩 음악을 가르친다.
전날 열린 강사 워크숍에서는 한국 강사들에게 ‘엘시스테마 선배’로서 깨알팁도 알려줬다. “욜라의 커리큘럼도 베네수엘라 엘시스테마와 80%는 같고 20%는 현지 사정에 맞춰 달라졌어요. 예를 들어 LA지역은 멕시코 출신이 많아 힙합과 록, 오케스트라 연주를 함께 할 때도 있죠. 한국에서는 오케스트라와 K팝 공연을 함께 해도 좋겠네요.”(코지마)
‘LA 현지화 전략’ 중 하나가 아이들의 재능을 가늠하기 위해 종이로 만든 악기를 먼저 손에 쥐어 주는 것. 에밀리는 “맨 처음 들어온 아이들은 6주간 종이 바이올린, 종이 리코더로 연습을 하게하고 자세를 본 후 악기를 결정한다. 아이 적성에 맞는 악기라고 판단해도 아이가 스스로 그 악기를 배우고 싶다고 느낄 때까지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룹 레슨’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학생마다 기량차가 날 때는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이 짝을 지어 가르치게 하는 제도는 어느 지역 엘시스테마나 동일하다.
“생각보다 한국 학생들의 기량이 아주 좋아요. 적극적인 자세도 미국에서 가르치던 학생들과 큰 차이가 없어요.” 수업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욜라는 이제 규모가 너무 커서 강사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이 적은 데 반해 한국은 기초 단계라 발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메세나협회, 한화그룹이 기획한 캠프는 12일까지 2박3일 진행됐다. 올해는 60여명이 참가, 11월 정기연주회에서 선보일 드보르작 신세계 교향곡, 요제프 스트라우스의 근심없이 폴카 등을 연습했다.
공주=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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