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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오 "정신 번쩍 들게 한 6.6점... 이젠 도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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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오 "정신 번쩍 들게 한 6.6점... 이젠 도쿄 앞으로"

입력
2016.08.1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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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아테네서 6점대 실수 후

한 발 한 발의 소중함 깨달아

“후배들에게 자리 물려주라고요?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빼앗는 격”

함께 동메달 차지한 北 김성국

“통일 되면 더 큰 메달 나올 것”

진종오가 11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슈팅 센터에서 열린 남자 50m 권총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과 트로피를 들며 활짝 웃고 있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진종오가 11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슈팅 센터에서 열린 남자 50m 권총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과 트로피를 들며 활짝 웃고 있다.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진종오(37ㆍKT)가 극적인 뒤집기로 50m 권총 올림픽 3연패에 성공한 11일(한국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슈팅 센터.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나온 국제사격연맹(ISSF) 관계자는 진종오의 그림과 이름이 새겨진 핸드폰 케이스를 들고 기자들에게 자랑했다. 그는 “진종오에게 직접 선물 받았다”며 싱글벙글했다. 일본 교도통신 기자는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진종오가 오랜 기간 세계 최정상에 군림하는 비결을 자세히 취재해갔다. “시력이 0.6이라는 게 사실이냐”고 묻길래 “사격 안경을 쓴다”고 답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꼼꼼히 메모했다. 낯선 풍경은 아니다. 한국 기자들도 수영의 마이클 펠프스(31ㆍ미국)나 육상의 우사인 볼트(30ㆍ자메이카), 축구의 리오넬 메시(29ㆍ아르헨티나) 같은 세계적인 스타를 취재할 때는 종종 그들의 자국 기자들에게 정보를 얻는다. 사격에서는 진종오가 펠프스나 볼트 못지않은 1인자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진종오의 총쏘는 모습과 이름이 새겨진 핸드폰 케이스를 보여주는 국제사격연맹(ISSF) 관계자. 리우=윤태석 기자
진종오의 총쏘는 모습과 이름이 새겨진 핸드폰 케이스를 보여주는 국제사격연맹(ISSF) 관계자. 리우=윤태석 기자

진종오의 승부사 기질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회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다. 그는 50m 권총 결선에서 7발째에 6.9점이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은메달에 그쳤다. 그 때 아픔을 통해 ‘한 발’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진종오는 훈련량이 많은 편이 아니다. 국가대표 사격 선수들은 보통 하루에 300~400발을 쏘는데 그는 절반 정도만 쏜다. 대학 시절 축구를 하다가 오른쪽 쇄골이 부러지는 바람에 어깨에 철심을 박았는데 장시간 훈련을 견디지 못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대신 그는 훈련의 질을 중시한다. 연습 사격 때도 한 발 한 발에 신경을 집중하고 이 감각을 그대로 유지해 실전에 나선다.

하지만 양질의 훈련만으로 그의 사격관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한 발 한 발에 혼을 담으려면 일정 수준에 올라야 하고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강한 정신력과 투혼이 있어야 한다는 게 진종오의 지론이다.

그의 ‘강철 멘탈’은 고교 때 길러졌다.

진종오는 남들보다 한참 늦은 강원사대부고 1학년 때 처음 총을 잡았다. 당시 그를 지도한 고(故) 김명권 감독은 진종오가 가장 존경하는 은사 중 한 명이다. 김명권 감독의 형인 김명석 춘천사격연맹 회장에 따르면 당시 강원사대부고는 혹독한 훈련으로 유명했다. 한 겨울 소양강댐 근처를 뛴 뒤 소양호에 입수하고 춘천마라톤대회 풀코스를 완주해야 했다. 진종오는 “그 때는 사격선수가 왜 이런 훈련을 하나 싶었는데 버티고 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함이 유지되더라”고 회상했다. 한 번은 김 감독이 진종오를 차디찬 눈밭으로 몰고 가 매몰차게 구르기를 시켰다. 한기 때문에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그 모습을 본 김 감독은 “사격선수가 겨울에 장갑도 안 끼고 밖에 나오느냐”고 호통을 쳤다. 총잡이에게 생명과도 같은 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진종오는 “말이 아닌 체험을 통해 사소함의 중요성까지 전달하신 분이다. 그 교훈을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이 2014년 2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을 때 진종오는 훈련을 제쳐둔 채 스승의 상을 챙겼고 발인 때 영정사진을 들었다.

진종오의 '강철멘탈'은 고교 시절 만들어졌다. 강원사대부고 2학년 시절 진종오(뒷줄 오른쪽 세 번째)와 고 김명권 감독(뒷줄 오른쪽 끝). 김명석 춘천사격연맹 회장 제공
진종오의 '강철멘탈'은 고교 시절 만들어졌다. 강원사대부고 2학년 시절 진종오(뒷줄 오른쪽 세 번째)와 고 김명권 감독(뒷줄 오른쪽 끝). 김명석 춘천사격연맹 회장 제공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진종오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올림픽 3연패라는 주변의 기대에 엄청난 중압감을 느꼈다. 리우에 와서는 집중력 유지를 위해 밥 먹고 자고 씻는 시간, 심지어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체크해놓고 움직였다. 하지만 지난 7일 10m 공기권총 결선에서 5위에 그치고 말았다. 그는 “10m 공기권총이 끝난 뒤 모든 걸 내려놨다. 욕심이 생겨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 여태까지 했던 대로 ‘진종오처럼 쏘자’ ‘남들에게 보여주는 사격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사격을 하자’고 마음먹었다”고 털어놨다.

이날 50m 권총 결선에서도 한 차례 고비가 있었다. 9번째 발에 6.6점을 쏘며 7위로 내려앉아 탈락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곧바로 9.6점을 쏴 기사회생한 뒤 한 때 선두와 4점 이상 벌어졌던 차이를 극복하며 7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벼랑 끝 위기에서도 한 치 흔들림 없는 정신력이 기적을 연출한 배경이다.

진종오는 “6점대를 쏜 뒤 솔직히 금메달 생각은 버렸었다. 3명 안에 들었을 때는 안심하는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경험상 여기서 만족하면 진짜 3위만 하더라. 그래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의지를 다졌다”고 밝혔다. 이어 “6점대가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줬다. 나를 깨워준 인생의 한 방이다”고 정의했다.

과녁을 조준하는 진종오의 모습.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과녁을 조준하는 진종오의 모습. 리우=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진종오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라는 분도 계시지만 그런 말씀은 자제해주셨으면 한다. 나는 정말 사격을 사랑하고 정정당당하게 경기하고 싶다. 은퇴하라는 건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빼앗는 격이다”며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시사했다.

리우=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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