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전력 대란과 부자 감세 가능성을 들은 바 있다. 올해 여름 들어 전력수요가 사상 최고치를 몇 번이나 갈아치우는 등 전력 대란 위기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누진제를 완화해 전기를 더 쓰게 하는 구조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현행 누진제는 전력사용이 적은 저소득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섣부르게 개편하면 외려 부자들의 전기요금을 깎아주고 저소득층의 부담을 늘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그러나 실제 통계를 보면 가정의 전력소비는 주로 밤 시간대에 이뤄지고 전체 에너지 소비 중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력수급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시간대는 주로 오후 2∼3시다. 지난 8일 최고전력수요가 역대 최고치인 8,370만킬로와트(㎾)에 이른 시간도 오후 3시쯤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정에서의 여름철 최대 전력소비는 주로 오후 8~10시 사이에 이뤄졌다.
한국전력 경제경영연구소가 집계한 2015년 8월 주택용 시간대별 전력소비계수를 보면 밤 9시가 1,330으로 가장 높았다. 전력소비계수는 한전이 시간대별 전력사용 패턴을 알아보기 위해 매년 집계하는 통계로, 1,000을 기준값으로 그보다 높으면 평균보다 많이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8월 중 주택용 전력소비계수를 시간대별로 보면 주로 퇴근 후 전력소비가 많이 이뤄졌다. 오후 6시 1,091에서 7시 1,177, 8시 1,275로 올라가 9시 정점을 찍었다. 이후 밤 10시 1,321, 11시 1,255, 자정 1,126으로 떨어졌다. 일반적인 전력소비 절정 시간대인 오후 2시는 1,016, 오후 3시는 1,017로 저녁에 비하면 높지 않은 수준이었다.
또 주택의 전체 에너지 소비 중 전력사용의 비중은 저소득층에게서 오히려 더 크게 나타났다. 2007년부터 매년 3년간 진행되는 산업통상자원부·에너지경제연구원의 에너지총조사 통계를 보면 2013년 기준 전체 에너지 소비 중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월평균 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의 경우 29.4%에 달하는 반면, 100만∼200만원 미만 26.8%, 200만∼300만원 미만 25.2%, 300만∼400만원 미만 22.9%, 400만∼500만원 미만 22.2%로 떨어졌다. 500만∼600만원 미만은 22.7%, 600만원 이상은 24.6%로 다시 올라갔지만, 여전히 100만원 미만 가구보다 낮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피크 때 산업·일반(상업)·주택용 전력소비 중 주택용의 비중은 적어 가정에서의 소비 때문에 전력 대란이 우려된다고 볼 수 없다”며 “누진제는 고소득 1인용 가구에 대한 지원이 돼 원래의 의미를 퇴색했으며 일반 가정이 겪는 불편에 비해 절약 효과 또한 적다”고 지적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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