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녀와 함께 동거녀의 딸을 살해한 혐의로 20년간 옥살이를 한 재일한국인 박용호(50) 씨가 누명을 벗었다.
오사카(大阪)지방재판소는 10일 박씨와 박씨의 옛 동거녀 아오키 게이코(靑木惠子ㆍ52)에 대한 재심 판결 공판에서 앞서 확정된 무기징역형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니시노 고이치(西野吾一) 재판장은 동거녀의 딸의 생명을 앗아간 화재가 자연 발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당시 발생한 화재가 박씨 등의 방화에 의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니시노 재판장은 “체포 당시부터 공포심을 안기거나 과도한 정신적 압박을 가해 두 사람이 허위자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빠뜨린 것으로 의심된다”며 수사과정에서 위법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검찰은 상소를 포기할 방침이라고 교도(共同)통신 등 일본 언론이 전했다.
이로써 두 사람은 처음 체포된 이후 무려 20년 11개월만에 무죄가 확정됐다. 박씨는 아오키와 함께 1995년 7월 오사카시에 있는 집 차고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목욕 중이던 아오키의 딸을 숨지게 한 혐의(살인 등)로 기소됐다. 생명보험금을 노리고 범행했다는 의심을 샀으며 2006년 무기징역 형이 확정됐다.
박씨 등은 이후 “강압수사로 자백을 강요당했고, 불을 지르지 않았다”며 2009년 재심을 청구했다. 결백을 믿은 박씨의 노모, 일본의 시민단체, 변호인 등이 오랜기간 무죄를 주장하며 법정투쟁을 지원했다.
이런 가운데 방화 재현실험 결과 박씨가 처음에 자백한 내용은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오사카고등재판소는 작년에 박씨 등을 석방하고 재판을 다시 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박씨는 풀려난 이후 “공포와 절망이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이성이 무너졌다. 영혼이 자살한 상태에서 거짓자백을 했다”며 도를 넘은 수사에 대해 울분을 토했다.
아오키는 국가(일본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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