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에르도안 정상회담
지난 11월 러 전투기 격추 후 냉랭
경제교류 재개 등 극적 관계 복원
중동 정세ㆍ테러전 지형 변화 예고
시리아 내전 등 입장차 여전 불구
터키의 러 의존도 더 커질 가능성
쿠데타 진압 이후 서방세계와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손을 잡았다. 마찬가지로 서방세계와 냉전 중인 러시아를 끌어들여 서방을 압박하려는 포석인 셈이다. 지난해 터키 공군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 사건으로 갈라섰던 양국이 극적으로 관계를 복원함에 따라 시리아 내전과 대테러전을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가 주목된다.
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회담한 두 정상은 기자회견에서 양국의 교역관계를 지난해 11월 이전으로 되돌리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당시 터키 공군이 시리아에서 작전 중이던 러시아 수호이-24 전투기를 격추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러시아는 ‘터키 스트림’ 가스관 건설 계획과 러시아 국영원자력공사(RosAtom)가 주도하는 터키 남부 아쿠유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보류하고 터키를 향한 단체관광 프로그램도 중단시켰었다.
경제교류가 재개될 경우 러시아와 터키는 양자간 무역규모를 최대 1,000억달러까지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병합으로 인해 유럽연합(EU)과 관계가 나빠지면서 차단됐던 대(對)유럽 석유수출 루트를 터키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터키 역시 국내 최초 핵발전소인 아쿠유 발전소 건설을 통해 핵발전 기술을 도입하고 동부지역의 전력수입을 절약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안보분야에 있어서는 여전히 두 국가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터키는 반란군 연합을 지지한다. 또 러시아가 이슬람 국가(IS)와 전투 중인 쿠르드군을 지원한다는 사실도 터키 내 쿠르드 반군세력과 전쟁 중인 터키에게는 껄끄럽다. 두 정상은 당장 안보 문제를 회담 의제로 삼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기자회견장에서 “우리는 시리아에서 서로 입장이 다르다”고 분명히 적시한 후 “앞으로 해법을 찾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아 외에도 터키와 러시아는 안보적 관점에서 서로를 경계해 왔다. 냉전 시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일원으로서 소비에트 연방의 중동 진출을 막았던 터키는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영향력이 축소되자 관계를 정상화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흑해에서 군사력을 증강하면서 터키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터키가 러시아와 관계 회복에 나선 것은 대(對)서방 공조 파트너로서 가장 적합한 상대가 러시아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서구 언론은 오랫동안 나토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EU 가입을 추진해 온 에르도안 대통령이 쿠데타를 진압한 이후 서방에서 제기하는 인권탄압 비판에 외교적 고립감을 느꼈기 때문에 러시아와 적극 관계개선에 나섰다고 봤다. 독재 성향인 푸틴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진행하고 있는 강도 높은 쿠데타 진압과 후속 권력 강화 조처를 눈감아줄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터키와 러시아의 연대가 더욱 깊어질수록 러시아 쪽으로 힘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쿠데타 이후 숙군 과정에서 터키 군부의 힘이 축소되고 서구와의 동맹관계도 불확실해지면 에르도안 정권이 안정을 위해 더욱 러시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이 경우 미국과 유럽에서 해외 개입에 대한 불만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틈을 타 중동과 흑해 일대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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