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현실적인 친구가 있다. 그가 이 글을 읽는다는 보장만 없다면, 현실적이라는 표현을 ‘세속적’이라고 고쳤을 것이다. 사람의 개성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현실적이란 표현 대신 세속적이라는 말이 쓰일 때가 있고, 세속적인 사람을 좀 완화해서 현실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각설하고, 현실적인 그는 당첨되지도 않은 복권을 가지고 나에게 선심 쓰는 일도 없다. 그가 당첨 근사치의 번호가 인쇄된 복권을 손에 쥐고 가슴을 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당첨되리라고 믿는 복권으로 함부로 인심을 쓰지 않는 그는 정말로 신중해 보인다. 모든 것이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가 빈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심 쓰는 것 또한 보지 못했다. 그의 명품 지갑에는 미어터질 정도로 빳빳한 현금이 들어 있지만, 그의 돈은 늘 ‘먼 곳’에 있다. 그가 자신을 정의하는 논거는 촘촘하고 반론의 여지 또한 없다. 한마디로 그것은 서로 다른 가치관의 문제이다. 그러니 서로의 속마음을 내보일수록 건널 수 없는 강폭만 넓어질 뿐이다.
그의 현실적인 성향은 타고난 듯하다. 나는 가끔 그와 나란히 앉아 있는 친구를 보며 ‘지출할 데도 별로 없는 저 인간의 지갑을 낚아채 옆에 앉은 친구에게 줄 수만 있다면!’ 하는 황당한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다 혼자 피식 웃곤 하지만, 현실적인 그는 절대로 비현실적인 내 웃음의 의미를 모르리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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