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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칼럼] 김영란법과 문화

입력
2016.08.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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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 부패문화 없애는 제도혁신

불의한 특혜 누린 집단 반발 우려도

인맥과 청탁 과거와의 단절 시작돼야

넥슨으로부터 주식 등 9억5,000만원 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진경준 검사장의 해임이 확정됐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검찰이 해임이라는 강수를 뒀으나, 실제 재판에서 진경준 전 검사장의 뇌물혐의가 입증될지는 불분명해 보인다. 과거의 사례로 볼 때, 직무관련성을 입증하기란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올 6월에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게 부당한 돈을 받고 거액의 탈세를 한 혐의로 대검수사기획관을 지냈던 홍만표 변호사가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매년 100억원이 넘는 수임료를 올렸던 홍 변호사에 대해서 전관 특혜는 없었다고 검찰은 결론을 내렸다. 홍 변호사가 정운호 사건의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와 두 차례 만나고 20여 차례 통화했지만 청탁은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한창이다. 4조5,000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분식회계가 어떻게 가능했으며, 회계 감사는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필자의 이런 질문에 회계사 한 분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같이 밥 먹고 술 마시는 ‘문화’가 없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회계감사를 할 수 없다고.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9월 28일부터 시행된다. 5년 전인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제안했던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에서 ‘이해충돌 방지’에 대한 내용이 삭제되었고, 작년 3월 27일에야 법 제정이 이뤄졌었다. 법 제정 이후에는 대한변협, 기자협회, 인터넷언론사, 사립학교ㆍ사립유치원 임직원 등이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지난 달 28일 헌법재판소는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김영란법은 학연ㆍ혈연ㆍ정실과 금품수수로 얽히고 설킨 부정청탁과 부패의 문화를 없애는 제도 혁신이다. 이런 제도 혁신은 혁명보다 오히려 어려울 수도 있다. 혁명적 변화로 인해 과도기적 어려움도, 의도하지 않았던 피해자도 발생할 수 있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기득권과 불의한 특혜를 누렸던 집단들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법 집행을 흔들려고 할 수도 있다.

얼마 전 친척분이 갑자기 전화를 했다. 형수가 병원 응급실에서 며칠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입원을 못하고 있다며, 시간이 너무 지나 혹 무슨 변고가 생길 수 있으니 아는 분에게 입원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었다면 부정청탁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민하다가 아는 분께 연락을 했다. 그런데 내가 연락하기 전에 이미 입원이 된 상태라는 답신을 받았다.

병원 입원부터 입사, 사업권 획득 등 우리의 모든 경제적ㆍ사회적 활동이 정해진 법규와 우선순위에 따라 결정되기보다는 힘 있는 사람들과의 학연ㆍ혈연ㆍ정실과 부정청탁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심을, 필자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문화에서 청탁과 줄서기 대신에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리라 믿으며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까. 사회에 대한 이런 불신은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갈등과 냉소적 아웃사이더를 양산하게 된다.

문화란 반복적인 행위로 형성되고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인식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잘못된 문화는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바로 세워야 한다. 법과 제도는 행위를 강제하는 것이고, 강제된 행위의 반복은 새로운 문화로 귀착되는 것이다. 과거 무단횡단이나 차선위반과 같은 교통문화가 교통관계법의 엄격한 적용으로 새롭게 바뀐 경험을 생각해 보라.

김영란법 시행은 우리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인맥과 청탁이 실력과 노력보다 높게 평가되던 과거와의 단절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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