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탁구 단식 정영식
5살 때부터 라켓 잡은 탁구 신동
中탁구 전설 공링후이가 롤모델
세계 랭킹 1위 中 마룽 상대로
2세트까지 앞서다가 역전패 당해
마룽 “中위협할 강력한 상대될 것”
“또 이런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자 탁구 세계랭킹 12위의 정영식(24·미래에셋대우)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세계랭킹 1위 중국의 마룽(28)에게 2-4로 역전패했다는 속상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조차 리우올림픽 남자 탁구 결승전은 사상 최초 올림픽 2연패를 노리는 중국의 장지커(28)와 현존 ‘세계최강’ 마룽의 다툼으로 예상할 만큼, 중국 탁구는 넘지 못할 ‘통곡의 벽’이었다. 메달 획득 여부를 떠나 중국 탁구를 넘어선다는 것. 탁구 선수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1차적 목표가 정영식에게도 깊게 각인돼 있었다.
탁구 선수를 꿈꿨던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부터 라켓을 잡은 정영식은 의정부초등학교 때부터 동년배에 적수가 없었다. 이후 국내 탁구 신동들만 모인다는 부천 내동중과 중원고교로 진학했다. 실력의 정체기가 찾아올 무렵, 정영식은 탁구 사상 유일한 남자 4개 메이저대회 우승자인 공링후이(41ㆍ중국)의 플레이를 보게 됐다. 이후 정영식은 자신의 ‘롤모델’ 공링후이의 동영상을 수없이 보면서 스윙은 물론 파이팅 포즈까지 따라 했다. 한 차례 기량이 급상승한 정영식은 만 18세가 되던 2010년 로테르담 세계선수권대회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남자 복식 동메달을 목에 거는 등 승승장구했다.
거칠 것 없던 정영식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선수 인생의 첫 시련을 맞았다. 정영식은 “당연히 국가대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반성하며 “한 달 정도 울면서 훈련도 게을리 해 체중이 2kg이나 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영식은 슬럼프 극복을 위해 공링후이를 다시 ‘소환’했다. 성실한 훈련과 기본기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탁구를 펼치는 공링후이의 플레이를 재현하려 했던 것. 제 기량을 회복한 정영식은 리우올림픽 국가대표로 다시 세계 무대에 섰다.
9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루 3관에서 열린 탁구 남자단식 16강전. 정영식의 앞에는 공링후이와 비견되는 마룽이 서 있었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월드컵, 그랜드 파이널, 아시안게임까지 모두 우승을 차지한 마룽은 올림픽 금메달만 손에 쥐면 공링후이에 이은 두 번째 ‘그랜드 슬램’ 달성자가 된다. 정영식 개인에겐 올림픽을 앞둔 지난 6월 열렸던 일본 탁구 오픈과 코리아 오픈 16강에서 자신을 0-4, 1-4 치욕을 맛보게 한 상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일방적 게임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정영식이 마룽을 괴롭혔다. 한 달 이상 마룽의 특성을 연구한 정영식은 백핸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2세트까지 따냈다. 그러나 마룽은 달랐다. 정영식의 패턴을 익힌 그는 3,4세트를 연달아 따내며 동률을 이룬 뒤 5,6세트 초반 실수를 만회하며 기어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경기 후 마룽은 “처음 두 세트를 빼앗기고 초조해졌다”며 “어려운 경기를 했고, 까다로운 상대였다”고 정영식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이어 “정영식은 아직 잠재력이 크다”며 “앞으로 중국을 위협할 강력한 상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영식의 패배로 리우올림픽 탁구는 중국의 독무대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중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탁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전체 메달 88개 중 47개 획득한 독점적 강국이다. 탁구에 걸린 4개의 금메달을 중국이 모두 휩쓴 것만도 7번의 올림픽 중 4차례나 되며, 베이징 올림픽때는 남녀 개인전 금ㆍ은ㆍ동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등 한 국가가 가져갈 수 있는 메달의 최대치를 따내기도 했다. 심지어 여자 단식은 아직 중국 외 타국가 선수들이 금메달을 한 차례도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남자 단식은 한국의 유남규ㆍ유승민, 스웨덴의 얀 오베 발트너가 3번 제동을 걸었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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