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전환 가속화로 5곳만 남아
정원 줄면서 스펙심사 강화 추세
수험생은 증빙서류 구하기 진땀
무려 2000장 제출한 사례까지
다양한 전공자 선발 취지 변질
“당국, 자질 검증 지침 제시를”
3년째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입시를 준비 중인 김윤정(27ㆍ여)씨는 올해 수시모집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A대학 지원을 포기했다. 김씨는 자기소개서에 2009년 방한한 유명 외국교수의 강연에서 느낀 점을 적었는데 A대 입학처는 해당 내용을 증명할 서류를 요구했다. 김씨는 함께 강연을 들었던 친구들에게 티켓까지 수소문하면서 증빙서류를 찾았지만 실패했고, 결국 인지도가 낮은 B대학에 원서를 냈다. 김씨는 9일 “작년 만해도 의전원 입시에서 상장이나 봉사활동을 위주로 검증했는데 올해는 지원자가 많아진 탓인지 유독 서류를 꼼꼼히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의전원들이 대거 의대로 전환하고 모집정원이 줄면서 의전원 입시가 과열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의전원도 우수학생 유치를 위해 자질 검증보다 이른바 ‘스펙’ 심사에 치중하면서 ‘다양한 배경을 지닌 지원자를 선발한다’는 도입 취지가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의대 문호를 개방할 목적으로 2003년 의전원을 만들었다. 의사가 되는 길을 다양화해 학벌주의를 완화시켜보자는 의도도 있었다. 당시 대다수 의대들이 “의전원 도입으로 사교육만 심해질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정부는 “의전원으로 전환하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선정하는 데 참고하겠다”는 당근책을 써가며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의전원을 운영한 결과 입시과열과 일부 전공 쏠림현상 등 우려하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났다. 정부는 결국 학제개편(의대 전환)을 허용해 2009년 27개교에 달했던 의전원은 현재 5곳만 남게 됐다. 올해 의전원 수시모집 평균 경쟁률은 지난해와 비교해 3배 이상 껑충 뛰었다. 의전원 폐지를 결정한 대학들이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면서 1,200여명이었던 입학 정원이 200여명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정책 실패의 후유증은 의전원 입시에 매달려 온 수험생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의전원을 유지하는 대학들이 성적으로 신입생을 뽑는 의대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 서류, 면접 등에서 객관적으로 입증 가능한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신모(29)씨는 대학 시절 참가한 연구프로젝트를 자기소개서에 써냈으나 학부생이라는 이유로 활동경력이 남아 있지 않자 일부러 일주일간 담당 교수의 다른 프로젝트를 도와주고 증명서를 받아냈다. 올해 C대 의전원 수시에는 무려 2,000여장의 스펙 자료를 제출한 수험생도 있었다. 의전원 수험생 안지연(29ㆍ여)씨는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 다양한 대외활동을 근거로 나를 어필해야 하는데 모든 경험을 서류로 증명하라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대학들은 의ㆍ치학교육입문검사(MEETㆍDEET) 외에는 계량화된 검증 지표가 적어 정성평가에 집중하는 의전원 입시특성상 서류 검토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차의과대 관계자는 “일부 지원자들이 합격을 위해 봉사시간을 부풀리거나 공신력이 낮은 민간자격증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세세한 부분까지 증빙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도 이런 폐단을 감안해 의전원이 의대로 전환한 후 4년간 입학정원의 30%를 학사편입으로 뽑도록 하는 대안을 내놨지만 실효성이 적다는 의견이 많다. M입시학원 관계자는 “대학들이 학사편입 요강에 MEET 점수를 반영하지 않는데다 규정상 지원도 한 곳만 가능하다”며 “학사편입 역시 사실상 출신학교와 성적 등에 좌우되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의전원이 다양한 전공 출신의 의사양성 기관으로 명맥을 이어가려면 지원자의 적성과 자질을 파악할 수 있는 검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의전원 면접 전형에서 부모의 영향력 등 적성과 무관한 평가 요소가 강화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지원자가 의학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심사할 수 있게 교육 당국이 명확한 선발 지침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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