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논란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남남갈등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 관영매체들이 자사 보도에 대한 청와대의 항의, 야당 방중 의원단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강도 높은 비판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이를 대서특필하며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나선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관영매체를 동원해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몰아가려는 전략에 청와대가 적극 호응하고 나선 모양새가 됐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9일 박 대통령이 전날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6명의 중국 방문에 대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일부 의원들이 중국의 입장에 동조하며 중국을 방문한다”고 비판한 발언을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의 비판에 대해 야당이 강력 반발하는 내용도 비중있게 실었다. 또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난 7일 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발사는 문제삼지 않고 사드 문제만 거론한다고 주장한 것과 더민주 의원들에게 방중 재고를 공개 요구한 대목, 해당 의원들이 청와대의 요구를 거부한 사실 등도 전했다.
신화통신도 박 대통령의 야당 방중 의원단 비판과 야당 지도부의 반박 소식을 전하며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의 방중에 당혹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전날에도 청와대가 더민주 의원들의 방중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과 해당 의원들이 “청와대의 건의를 받아들여 방중을 취소할 경우 청와대가 방중을 저지한 것이 돼 한중관계가 더 악화할 수 있다”고 말한 사실 등을 자세히 다뤘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특히 이 같은 보도를 하면서 대부분 한국 언론들을 인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여기에는 자신들과는 무관하게 한국 내에서 사드 배치 결정을 두고 정치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지난주 내내 공세적인 압박과 근거없는 억지 주장으로 남남갈등을 부추겨놓고 이제 와선 객관적인 팩트 전달자를 자처한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과 청와대 홍보수석의 발언에 이어 야당의 반발을 소개하는 형식을 통해 은연중에 박 대통령이 정쟁의 한복판에 있음을 강조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한국 내부의 갈등을 전하면서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보복 가능성도 공개 언급했다. 환구시보는 논평에서 “한국이 사드를 배치할 경우 안전이익을 훼손당하는 중국이 한국에 대해 각종 제재를 실행하는 건 당연하다”면서 “한국은 중국이 어떤 말로 조언하는 것보다 한번 아파보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내 정치적 논란을 적극 부각시킨 것까지 감안하면 중국의 반대는 물론 한국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를 강행할 경우 그 후과를 박 대통령이 져야 한다는 취지다.
베이징(北京)의 한 소식통은 “중국은 사드 배치 시점을 늦추도록 하는 걸 현실적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는 한국 내부의 갈등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관영매체가 불씨를 놓은 상황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일찌감치부터 전면에 나선 건 결과적으로 중국 측의 전략에 말려든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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