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경쟁의 무게 중심이 경제분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8일 대규모 감세 및 규제완화 등 ‘미국 경제 부활방안’을 내놓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이를 강하게 비판하며 기존 경제공약을 구체화한 내용을 10일쯤 발표키로 했다. 당초 두 진영은 세금ㆍ통상ㆍ재정정책에서 큰 간극을 드러냈으나, 상대방의 강점 공약을 베끼면서 특정 분야에서는 사실상 같은 목소리를 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유세에서 공화당의 전통적 공급주의 경제정책인 ‘감세’와 통상 분야의 보호무역주의를 접목시킨 경제 공약을 내놓았다. 디트로이트는 올해 대선의 최대 승부처로 떠오른 ‘러스트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어서 이곳 민심을 공략하기 위한 반격 카드를 꺼낸 셈이다. 트럼프는 여기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후보가 망쳐놓은 미국 경제를 살려놓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는 이날 최상위층 소득세를 현행 39.6%에서 33%로 낮추는 한편, 법인세도 현행 35%에서 15%까지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미국 기업이 해외에 유보 중인 현금에 대해서는 10% 단일세율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또 상속세를 없애는 한편, 대기업 투자에 대한 세제혜택도 제공키로 했다.
환경보호ㆍ기후변화 대책 등을 이유로 부과된 연방정부 차원의 규제를 대거 없애겠다는 약속도 내놓았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은 급감하는 반면, 기존 석탄ㆍ가스ㆍ석유산업에 대한 투자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통상부문에서는 그 동안 수 차례 강조한 대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 혹은 재검토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반면 클린턴은 “트럼프는 1% 부자만을 위한 기존 공화당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한편, 세제와 규제개혁에서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클린턴은 연간 소득 500만 달러(약 54억원) 이상 소득 최상위층에 대해 4%의 ‘부유세’를 매긴다는 방침이다. 최저 임금도 현행 시간당 7.5달러를 15달러로 인상한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트럼프도 유권자들의 표심을 의식해 당초 반대입장을 접고 최저임금 인상에는 동의한 상태다.
클린턴 진영은 기후변화 대책과 관련된 기존 규제를 계속 유지하거나 강화할 태세다. 그러나 미국 근로자 일자리 보호를 명분으로 TPP 체결에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필요하면 대규모 무역흑자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등 트럼프와 같은 수준의 보호무역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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