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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한 끗 차이

입력
2016.08.0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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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수영경기를 봤다. 양궁도 봤다. 한 끗의 차이를 봤다. 빨라서 금방 지나간다. 느린 화면으로 다시 돌리고 클로즈 샷으로 보여줘야 그 짜릿한 한 끗이 보인다. 아, 냉정한 사람들. 기어이 천분의 몇 초 차이까지를 봐서 승패를 가르다니. 막판에 한 뼘, 아니 손가락 한 마디 차이로 1등이다. 바람이 불어서 화살이 밀려나면 8점 되고 아슬아슬하게 선에 닿으면 10점이다. 운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올림픽만 보고 달려온 선수들이 운에 기대고 살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별별 훈련을 다 했을 거다. 나중에 중계 영상을 보며 땅을 치는 선수와 코치들이 숱하겠다 싶어 마음 아팠다. 조금만 더 빨리 밀걸, 조금만 더 왼쪽으로 쏠걸. 그러나 한 끗이 우열을 갈랐고 그 순간은 다시없다.

나는 ‘마방진’이라는 극단에서 연극을 한다. 써클 선배가 이름을 지어주셨다. 처음 듣는 순간, 훅 넘어가서 작명 값으로 라면과 떡볶이 김밥을 한 몫에 샀다. 마방진은 가로, 세로, 대각선의 합이 같게 정사각형에 숫자가 배열된 것을 말한다. 심오하고 철학적이어서 고백하건대 깊게는 알지 못한다. 한 칸의 숫자가 달라지면 다른 칸들의 숫자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안다. 한 끗이라도 차이 나면, 마방진이 아니다. 못 된다. ‘마방진’에 꽂힌 까닭은 연극의 속성 때문이다. 연극은 늘 어떤 해답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아니 모든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는 식이랄까. 배우의 감성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고 믿어진다. 문장의 사이를 좀 더 두던, 언성을 좀 더 높이던, 손짓 발짓을 과하게 하든 아니든 그 순간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항변하면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이게 마음에 안 들었다. 과연? 아닐 거다. 상대방의 액션에 따라 리액션하는 빈칸의 값은 변해도 그 합은 언제나 같아야 맞다. 리액션에 따른 리액션도 역시 변해야 맞다. 그렇지 않고 불변의 어떤 값을 정해놓고 연기를 한다면? 석연치 않다. 볼만하지도 않다. 서로 주고받는 합이 조화롭지 않은데 어찌 좋은 연극이랴. 그래서 매 순간 달라질지라도 변함없이 균일한 연극적 합이 나오는 것. 내 생각에는 그것이 프로 연극이다. 아무나 연극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 한 끗의 차이로 아마추어리즘과 구별된다.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한 끗 차이가 프로에는 꼭 있다.

올림픽 중간광고 시간에는 바둑을 봤다. 기름회사의 타이틀전 3국이었는데 우변의 백진영에 까만 돌이 곧장 뛰어들었다. 분명 틈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흑의 패착. 하수인 내 눈에도 뭔가 이상했다. 올림픽과 바둑을 왔다 갔다 하며 봤다. 나중에 흑은 돌을 거뒀다. 그리고 복기를 하는 데 아니나 다를까 우변을 되짚었다. 복기에서는 간단하게 두 집이 나서 사는 모양이 나왔다. 바둑은 수순의 묘다. 특히 사활에서는 그 순서대로 두면 살고 아니면 죽는다. 그러니 어찌 한 끗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으리.

김봉남 선생께서 생전에 방송에서 말씀을. 디테일이 중요해요. 패션쇼에 한 뼘의 천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페르시아까지 가서 사 왔어요. 음. 고작 한 뼘의 천을 말이다. 디테일. 그 한 끗의 미묘하고도 오묘한 차이. 연극은 제작비 때문에 포기해야 할 것이 늘 생긴다. 프로듀서는 꼭 필요하지 않다 면을 전제로 재고를 요청한다. 대개의 경우 나는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하지만 그 한 끗의 차이를 위한 다른 대안까지 포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이 없다면 그 장면은 그 장면이 되지 못하니까. 그러고 보니 어디를 보아도 한 끗 차이. 대세에 지장 없다고 용감하게 한 끗의 차이를 막 뭉개지는 말자. 어른들의 세계가 프로의 세계라면 한 끗 차이를 다른 차원의 차이로 확장해서 봐 주자.

아! 다시금 올림픽 선수들의 그 치열한 삶에 경의를, 한 끗 차이로 출전의 기회와 메달을 놓친 분들께도!

고선웅 연극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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