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ㆍ고속도로ㆍ백화점ㆍ논ㆍ강 등등
놀이동산 찾아 서울로 휴가 떠나
육지엔 흔하지만 제주에는 없어
화산섬 특성과 적은 인구가 이유
기차, 백화점, 고속도로, 강, 놀이동산, 스키장, 동물원 등등. 제주사람들은 이들 단어들을 TV에서 보거나, 아니면 제주에서 벗어나 뭍(육지)으로 가야 접할 수 있다. 화산섬이라는 제주 지리적 특성과 인구가 60여 만 명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육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제주에는 없는 것들이다.
우선 제주에는 기차가 없다. 엄밀하게 말하면 ‘달릴 수 있는 기차’가 없다. 물론 지하철도 없다. 제주시내 한복판에 있는 삼무공원에 가면 제주에서 유일하게 기차를 볼 수 있지만 타고 어디로 떠날 수는 없다. 전시용이기 때문이다. 이 기차는 일본에서 제작된 기관차로 현재 국내 유일하게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며 남아있는 석탄 증기기관차로,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414호인 ‘미카형 증기기관차 304호’다. 1967년까지 전국의 철도를 달리다 퇴역했다. ‘304호’는 1978년 제주지역 어린이들이 기차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박정희 대통령이 ‘배려’ 때문에 제주섬에 오게 됐다. 제주사람들에게 항공기는 버스 타듯이 대중교통 중 하나이지만 기차는 평생에 몇 번 타볼까 말까 하는 귀한 교통수단이다.
제주에는 고속도로와 터널도 없다. 평화로와 번영로 등 고속화도로가 있지만 자동차만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는 없다. 당연히 돈을 내야 이용할 수 있는 도로도 없다. 이 때문에 고속도로?터널 톨게이트도 없어 상당수 제주사람들은 ‘하이패스’가 뭔지도 모른다. 또 몇 시간씩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 들려 명물 간식거리들을 먹는 재미도 제주에서는 느낄 수 없다.
제주에는 백화점도 없다. 백화점이라고 이름을 내건 건물들이 있기는 하지만 몇몇 상가들이 모여 있는 수준으로 대도시의 백화점과는 거리가 멀다. 그나마 대형마트들이 백화점을 대신하기 때문에 연일 북적거린다. 최근 제주 인구가 급증하고 있어, 조만간 제주에서도 백화점을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은 있다.
제주도가 세계적인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놀이동산과 동물원, 워터파크 등 대규모 놀이시설도 없다. 이 때문에 어린 자녀들이 있는 제주 부모들의 1순위 여행지가 서울이다. 남들은 대도시를 빠져나와 제주에 오고 싶어 안달하지만 정작 제주사람들은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로 휴가를 떠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제주지역 학생들이 떠나는 수학여행 코스에도 꼭 놀이동산이나 동물원이 포함된다.
특히 스키장은 제주사람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다. 제주에는 눈도 자주 오지 않을뿐더러 오더라도 금방 녹기 때문에 스키를 탈 조건이 되지 못한다. 심지어 제주에는 스케이트장도 하나 없다. 대신 겨울철이 되면 눈썰매를 메고 한라산 중산간 등 눈이 잘 녹지 않는 곳을 찾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정도다.
제주에는 유유히 흐르는 강도 없다. 계곡이나 하천이 있는 정도다. 특이한 점은 일년 내내 물이 흐르는 하천이 많지 않다. 대부분 비가 내려야 물이 흐르는 건천(乾川)이 대부분이다. 화산섬이라는 지질 특성상 비가 내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땅 밑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제주의 지질 특성상 제주에서는 논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거의 없다. 대신 제주사람들은 밭에서 자라는 밭벼인 ‘산듸’를 재배했다. 산듸는 찰벼 품종으로 밥맛이 일반벼보다 더 좋다. 하지만 산듸의 생산량이 많지 않을뿐더러 계속 줄어들고 있어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제주지역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벼와 모내기를 가르치기 위해 고무화분에 흙을 담아 모내기 체험 활동을 하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제주에는 굴뚝 달린 공장도 보기가 쉽지 않다. 관광지 특성상 3차 산업과 1차 산업이 발달되어 있는 반면 2차 산업은 발달하지 않아 수백명, 수천명이 근무하는 대규모 공장은 없다.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제주에는 ‘왜 이게 없지’ 하는 것들이 문득문득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살아오면서 별로 필요성을 느껴보지는 않았다. 제주사람들은 수십년, 수백년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없던 것들이 새로 생겨나면 좋은 일이고, 그저 없어도 그 뿐이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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