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가신그룹과 경영권 다툼
성년후견 청구까지.. 벌금형 받아
부친이 40여년간 일군 기업을 차지하려다 쫓겨난 아들이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으며 측근들이 이를 감추고 있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직원들에게 보냈다가 형사처벌까지 받는 신세가 됐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5단독 최윤정 판사는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약식 기소돼 정식재판을 청구한 H(58)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고 8일 밝혔다.
수(水)처리 전문 중견기업 A 주식회사의 창립자이자 오너의 장남인 H씨는 2013년 9월 A사 사장에 취임했다가 이듬해 7월 해임됐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회사를 일군 가신(家臣)그룹과 경영권 문제로 마찰을 빚다가 자신의 배임 등 비위 의혹이 아버지에게 보고돼 쫓겨났다. 해임되기 한 달 전 H씨가 형제 3명과 함께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대신해 회사를 이어가야 한다”는 취지로 아버지에 대한 성년후견개시심판을 서울가정법원에 청구한 것도 ‘미운털’이 박히게 된 중요한 이유였다.
경영에서 밀려난 H씨는 2014년 9월 ‘(아버지 측근인) H감사와 K이사는 저를 포함한 전임 임원들의 비위혐의에 관한 추측과 소문을 부풀려 만들었다’,‘회장님이 치매약을 복용하고 암 판정을 받은 사실을 알고도 가족 등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게 함구토록 지시했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직원 180명에게 전송했다. 아버지 측근들이 A사의 가업승계를 막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가족이 아버지에게 접촉하지 못하도록 사설경호원까지 고용했다는 내용도 더했다. 나흘 뒤 그는 ‘회장님께서 당신의 주민번호 뒷자리도 기억하지 못한다’며 아버지의 정신이상 증세를 강조하는 이메일을 추가로 돌렸다.
또 H씨는 그 해 10월 성년후견 사건에서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내용의 준비서면을 제출한 아버지의 측근 임원에게 항의하러 회사를 찾아가 “이 얼간아”라고 고성을 지르며 임원 회의를 10여분간 방해한 혐의도 받았다. 법원은 아버지가 경영판단능력을 잃었다며 H씨가 낸 성년후견 청구를 기각했다.
최 판사는 “H 씨가 피해자 측을 비방할 목적에서 허위사실을 게시했다”며 “아버지가 명료하고 구체적인 진술을 했음에도 정신건강 상 문제를 부각했는데, 주된 동기는 경영권 분쟁에서 피해자 측에 타격을 입히는 데 있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실적시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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