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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한국 연극사에서 가장 중요한 극단 목화

입력
2016.08.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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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한국 연극사에서 가장 중요한 극단 목화

‘감히’ 한국 연극사에서 가장 중요한 극단 목화

‘감히’ 한국 연극사에서 가장 중요한 극단 목화

1991년 연극 평론가 김미도씨가 극단 목화를 두고 “한국 연극사에서 가장 중요한 극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진술했을 때, 거기에는 ‘감히’리는 한정어가 딸려 있었다. 이제 그 낯가림 막은 사라졌다. 최근 만난 그는 “한국적 정체성이 가장 살아있으며 동시대의 의미망을 놓치지 않는 연극의 주체”라며 아무런 유보 조항 없이, 오태석 선생을 정의했다. “모든 면에서죠. 언어, 시청각 등 총체적 면에서요.”

그랬다. 전통과 현재를 한국적 연극 어법으로 아우르는 오 선생의 연극을 기자가 처음 접했던 것은 ‘춘풍의 처’를 통해서다. 훗날 선생이 강조하던 우리의 소리와 빛깔이 두서없이 기자를 관통해 왔다. 연극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교과서에서 읽은 토막 상식이 전부였던 기자가 오태석 선생과 목화라는 독특한 연극 생태계와 충돌(당시 소극장 이름이기도 였다)한 계기였다. .

“ ‘감히’ 한국 연극사에서 가장 중요한 극단”

독특한 무대 미학 덕에 종종 돌발적인 존재로 인식되기도 했던 오 선생은 그러나 예외적 인물은 아니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실은 그 역시 데뷔는 부조리극이었다. 그것은 소년이 한국 전쟁이라는 엄청난 사태를 나름 이해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안민수로부터 ‘스카펭의 간계’를 자기만의 어법으로 해석하라는 과제를 부여 받고, 본능적으로 한국적 개성을 투여했다. “경험한 언어와 환경에 대한 오 선생의 기억력은 참으로 경이롭다. 작가이며 천재다.”

연극연출가 오태석 대표. 뉴시스
연극연출가 오태석 대표. 뉴시스

1960년대 이후 우리 연극 미학의 큰 줄기로 자리매김한 한국적 전통의 복원이라는 큰 흐름에서 출발, 서구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에서 한국적인 것을 화두로 잡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19세기 이후 아르토, 브레히트 등을 주축으로 일기 시작한 동양 연극에 대한 서양의 관심은 아방가르드 예술이라는 문제 의식이었다. 그 같은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연극은 비로소 ‘인식’되고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양의 시선이라는 한계를 걷어내지 못 했다.

진정 문제는 가장 한국적 성정이 풍성한 이미지 속에 녹아든 무대 만들기다. 그 작업에서의 수장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시간에는 어떤 역사적 필연이 주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선구적 작업으로)안민수, 유덕형 등의 진정한 한국적 연극 어법의 탐색이 있었다. 특히 안민수의 연극 미학은 큰 자극이었고, 서구 연극의 렌즈를 통해 우리 연극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였다.” 오태석 연극 미학의, 이를테면 역사적 필연성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대학가에서는 마당극, 탈춤, 풍물 등 민족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저항의 상징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던 와중에, 1980년대 들어 생겨난 관제 무대 ‘국풍’ 등은 체제 내 전통 문화의 존재 방식을 나름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문화 배우기 열풍과는 무관한, 극히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는 한국적 정서를 오태석은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동체나 진배없는 그의 극단 목화는 우수마발의 소품까지 오태석이라는 수장의 머릿속에서 이미지화된 대로 재현해 내 왔다. 오죽하면 ‘오사단’이라고, 지청구 같은 말까지 나왔으랴!

박근형
박근형

그처럼 온전히 몸속에 있던 자원들을 자양으로 연극을 한다는 관점에서 태석의 관점을 잇고 있는 사람이 이윤택”이라고 김 씨는 말했다 “엄밀히 말해, 거기까지다.” 이윤택이라는 문화적 아이콘의 의미는 뭘까? “1980년대 한국적 연극 붐은 돤절의 위기감에 대한 대응물 이상은 아니었는데 이윤택 이후는 한국적 연극이 정말 단절되는 뜻이다.”

“한국적 입말, 열린 무대는 그 연장선”

그렇다면 박근형표 연극은 뭔가? “열린 무대와 간단한 소품 등을 주요 전략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박근형은 오태석 무대의 연장선상에 있다. 3 ? 4조, 4 ? 4조 같은 의식적 운율성까지는 아니지만 박근형의 연극 언어는 자연스런 한국말을 추구한다. 노골적으로 시적(詩的)인 언어는 아니지만 굉장히 한국적인 입말(구어·口語)을 추구한다. 이는 (오태석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한국 고유의 운율성을 띠는 것처럼) 박근형의 생래적 특징이다. 그가 연극을 출발했고 영향 받은 기국서의 극단 76단이 워낙에 자유롭고 자연스런 연극 미학을 추구했던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바 ‘한국적 연극’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창성의 근거다. 굳이 비긴다면 김정옥의 포스트모던적 드라마트루그의 한국적 버전이랄까. ” 평론가의 말을 가감없이 옮겨 보았다.

김미도
김미도

공공 극장의 붕괴, 긴밀했던 극작-연출 관계의 와해 이후 연출가 주도 경향, 크라우드 펀딩 같은 새로운 제작 방식의 필요 등 현재 우리 연극계는 턱밑까지 차오른 문제들에 포위되어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그같은 문제들의 한꺼풀 아래에는 언어의 빈곤이라는 고질병이 또아리 틀고 있음을 본다. “현재 우리의 연극은 연출가가 주도하는 대세를 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언어의 빈곤 양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가부키극장이라는 전통 연희의 공장이 활발히 가동 중인 일본의 예를 들먹일 것도 없이, 우리 연극의 전통성(나아가 정통성?)은 오태석과 이윤택이라는 두 예외적 거인들로써 종결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유령처럼 극장가를 배회하고 있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개설 가동중인 강의 ‘삼국유사 스토리 텔링’을 김미도 교수가 슬몃 내비친 것은 작은 위안을 주고 싶어서였을까?

장병욱 편집위원 a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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