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나라와 작은 나라 상생책 필요
사드 배치 中 반발 근본대책 있나
기대할 게 없다는 체념만 줘서야
역사적으로 큰 나라 옆 작은 나라가 국권을 보전하기란 쉽지 않았다. 또한 큰 나라라고 마냥 작은 나라를 깔보고 억눌렀다간 궁지 몰린 쥐에 고양이 물린다는 식으로 큰 낭패를 당한 일도 적지 않았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치세가들에게 대국과 소국의 관계유지 방식이 큰 화두였던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외교방책이 사대자소(事大字小)였다.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기고(小事大),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돌봐주는(大字小) 관계다.
맹자는 “이웃나라와 잘 사귀는 방법이 있는가”라는 제(齊)나라 선왕(宣王)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있습니다. 오직 어진 자라야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돌 볼 수 있으며, 지혜로운 자라야 능히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습니다.” 예(禮)에 기초한 사대자소는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작동했지만 대국과 소국의 상생을 보장하는 매우 현실적인 외교정책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큰 나라의 어진 자’와 ‘작은 나라의 지혜로운 자’ 조합이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현실화하기 어려운 방책이기도 했다.
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을 둘러싼 논란 속에 큰 나라 옆 작은 나라가 어떻게 국권을 보전하고 생존책을 강구해 나가야 하는지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더민주 사드대책위원회 소속 의원 6명의 방중에 대해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과 보수진영으로부터 신사대주의니 매국행위니 하는 비난과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 지혜로운 길인가를 차분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중화 대부흥을 꿈꾼다는 중국이 우리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한류 제재, 상용비자 제한, 한국관광 억제 등의 보복성 조치를 취하는 것은 대국 풍모에 어울리지 않는 치졸한 대국질 행태다. 하지만 턱밑 한반도에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제 일부로 작동할 사드 배치로 대미 핵억지 전략균형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판이다. 이를 중대한 국가안보 위협으로 여기는 중국이 북핵ㆍ미사일 방어용이라는 한ㆍ미의 설명을 그대로 믿고 순순히 수용할 리 만무하다.
국제정치의 대전제는 불신이다. 미국이 냉전시대의 핵전쟁 억지 원리인 상호확증파괴에 의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개념을 거부하고 완전한 방패 MD체계 구축을 집요하게 추진하는 것도 다른 나라의 선의에 자국 안보를 맡길 수 없다는 불신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중국만 한ㆍ미에 대한 신뢰를 갖고 한반도 사드 문제를 바라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이런 류의 신뢰를 하지 않는 게 바로 국가의 속성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제정치의 이 같은 속성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사드 배치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드 배치 결정 후 벌어질 국내외 상황을 충분히 예견하고 대비한 흔적은 전혀 없다. 만약 그런 대비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우왕좌왕 속에 대책 없이 혼선으로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사드배치 불가피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생략한 게 오늘의 극심한 분열 원인이다.
지혜 있는 국가원수라면 우리 사회 내부의 이견까지도 대국과의 협상에서 활용하는 용이주도함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야당 의원들이 북한과 맥락을 같이하는 황당한 주장을 편다거나, 중국의 입장에 동조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야당 의원 말의 전후맥락을 무시하고 비난에 편리하게 왜곡하고, 우리 야당의원들을 중국편이라고 몰아붙여 결과적으로 중국을 도와주는 꼴이다.
북핵ㆍ미사일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필수적인 중국의 협력 가능성은 가물가물해졌다. 중국이 찌질한 보복조치를 넘어 본격적 대응으로 나올 경우 경제적으로 중국 없이 생존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는 되어있을까. 사드 배치를 담보로 하는 한미동맹은 수천억 철강 보복관세에는 무력하다. 대국의 배려와 어짐을 기대할 수 없다면 큰 나라 틈바구니에서 국가를 보전할 지혜라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정부에 기대할 게 없다는 탄식과 체념만 높아가고 있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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