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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납자 뻔뻔 행각 방송에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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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납자 뻔뻔 행각 방송에 고스란히

입력
2016.08.0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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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왼쪽)과 서인국이 드라마 ‘38 사기동대’에서 콤비플레이를 펼쳤다. OCN 제공
마동석(왼쪽)과 서인국이 드라마 ‘38 사기동대’에서 콤비플레이를 펼쳤다. OCN 제공

“체납 세금을 완납하셨습니다.” 우직한 공무원의 덤덤한 이 한 마디가 이토록 짜릿할 줄이야. 수세에 몰린 판을 단숨에 뒤집는 카운터펀치처럼 통쾌하다.

고액 체납자를 상대로 사기를 쳐서 체납 세금을 받아내는 공무원 백성일(마동석)과 사기꾼 양정도(서인국)의 활약상을 그린 OCN 드라마 ’38 사기동대’가 호평 속에 6일 종방했다. 평균 시청률 5.9%, 분당 최고시청률 6.8%(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OCN 오리지널 드라마 중 역대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 방영 내내 ‘사이다 드라마’라는 찬사와 지지가 쏟아졌고, 사회고발 드라마의 자장을 넓혔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박수 받으며 퇴장한 ’38 사기동대’의 성공 요인으로 탄탄한 만듦새와 배우들의 열연이 손꼽힌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기여도가 가장 큰 일등공신은 현실의 한국사회다.

통렬한 사회비판

드라마는 편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상습적으로 탈세를 저지르면서도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층을 정조준한다. 법도 어찌하지 못하는 악덕 체납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나서는 정의로운 영웅은 아이러니하게도 사기꾼이다. 한정훈 작가는 전작 ‘나쁜 녀석들’(OCNㆍ2014)에서 범죄자들을 모아 더 큰 흉악범죄를 소탕했듯, 이 드라마에서도 ‘악으로 악을 처단한다’는 설정으로 답답한 현실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드라마가 그려낸 부조리의 피라미드는 견고하다. 60억 체납자를 부동산 사기로 굴복시키자, 그 배후에 있는 500억 체납자가 정체를 드러내고, 대중을 개ㆍ돼지로 여기는 권력층을 무너뜨린 쾌감을 느낄 새도 없이 새롭게 등장한 1,000억원대 체납자의 반격에 그만 아연실색하게 된다.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엮여 나오는 부패의 사슬에, 삶은 고구마 100개쯤 먹은 듯 가슴이 턱 막혀온다. 이 드라마는 한국사회에 대한 정밀묘사와 통렬한 풍자로 공감을 얻었다.

’38 사기동대’의 박호식 책임프로듀서(CP)는 “사기의 수법이 나날이 발전하고 피해의 규모도 글로벌해지다 보니 드라마에 더 주목하게 되는 것 같다”고 짚었다. 그는 “억울하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는 것 또한 사기극이 해야 할 역할이라 본다”며 “사기극을 단순한 흥미 거리로 접근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38 사기동대’는 돈과 권력으로 갑질을 서슴지 않는 권력층을 풍자한다. OCN 제공
‘38 사기동대’는 돈과 권력으로 갑질을 서슴지 않는 권력층을 풍자한다. OCN 제공

이보다 더 사실적일 순 없다

작가진은 발로 뛰는 취재로 드라마의 사실성을 더했다. 서울시청 산하 38 세금징수과의 협조를 얻어 세무공무원들의 업무와 체납자들의 행태를 파악하고 관련 사례를 수집해 드라마에 반영했다.

일례로 4회에서 체납자가 가택수색에 응하지 않자 조사관들이 119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 담겼는데 이는 실화다. 문을 안 열어주면서 집에 없는 척 위장을 했으나 창문 밖으로 담배꽁초를 떨어뜨리는 모습이 발각돼 조사관들이 119에 사다리차 지원 요청을 했던 사례에서 따왔다.

또 6회에서 500억을 체납한 재벌의 저택을 찾아가 가택수색 하는 장면도 현실에 기반했다. 대규모 인원이 한꺼번에 들이닥친 모습, 방송사 기자와 카메라의 대동, 미리 집의 설계도와 구조도를 숙지한 뒤 수색 구역 분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집안의 사람 발견한 점, 문을 따고 들어가니 체납자가 샤워를 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앉아 있었던 상황, 체납자가 기자들에게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모습 등이 모두 “실제 상황”이었다.

1회에서는 조사관들이 가택수사를 집행하며 세탁기와 전자레인지 같은 곳에 숨겨진 보석과 현금다발 등을 찾아내던 장면이 그려져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세금징수과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단숨에 각인시킨 장면이다. 박 CP는 “서울시 38 세금징수과 15년 역사상 가장 인상 깊었던 체납자의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장면”이라고 밝혔다. 가택수색 당시 세탁기 안에 숨었던 체납자가 포장마차에서 자신의 경험을 무용담처럼 떠드는 모습을 목격한 한 시민의 제보로 꼬리가 밟혔다. 주민등록까지 말소시키며 버티던 체납자는 불시에 들이닥친 2차 가택수색 이후 1시간 만에 세금을 완납했다고 한다.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헌법 38조를 전면에 내건 ’38 사기동대’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실례를 토대로 “끝까지 사기쳐서 반드시 징수한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박 CP는 “돈과 권력으로 소위 ‘갑질’을 하는 고액 체납자들이야말로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정한 악인일지도 모른다”며 “법적인 절차 안에서 악을 처단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대중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상실감, 두려움 등을 해소하고 싶었다”고 했다. 박 CP는 “백성일이 세금을 걷는 방법은 사기지만 의도는 악하지 않고, 백성일도 어떤 외압에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는 계속해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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