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상태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비난하는 말을 했다가 3년간 옥살이를 한 뒤 사망한 50대 남성의 유족이 34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다.
5공화국 시절 충북 청주시 미평동에 살던 김모(당시 52세)씨는 1982년 2월 10일 오후 8시 30분쯤 만취 상태로 버스에 올라 혼잣말로 “막노동 생활로 어찌 살아갈 수 있나. 전두환 대통령 정치가 김일성보다 못하다. 이북이 더 살기 좋다”고 내뱉었다.
술 기운에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이를 들은 버스 승객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김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에 넘겨진 김씨는 반국가 단체와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김씨는 “술에 취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3년 만기복역 후 1985년 출소한 김씨는 보호감호소에서 생활하다 생을 마감했다.
가장이 졸지에 ‘빨갱이’로 몰리면서 유족들은 예기치 못한 고통을 받았다. 형사들이 수시로 집에 드나들고 취업도 못하는 등 ‘빨갱이 가족’이란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친척들마저 발길을 끊어 버렸다.
유족들은 34년이 흐른 지난해 말 김씨의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며 청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유족들은 “단순한 술 주정을 친북 활동으로 둔갑시켰다”며 김씨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변론을 맡은 이선경 변호사는 “문제가 된 김씨의 발언은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거나 자유민주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당시 법에 따르더라도 찬양 고무의 구성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과거 사법부가 저지른 부끄러운 과오”라고 말했다.
김씨의 재심 청구 사건을 맡은 청주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이현우)는 지난달 심문을 종결하고 재심 개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김씨는 4공화국 시절에도 비슷한 일로 옥살이를 했다. 그는 1975년 5월 23일 서울 성북구 성북2동 자신의 집 마당에서 술에 취해 박정희 정권보다 북한이 우월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는 등 같은 해 8월까지 수 차례 비슷한 말을 했다. 결국 이웃의 신고로 징역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이 사건은 유족의 청구로 재심이 이뤄져 2013년 11월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조용헌)는 “김씨의 발언은 시사적인 관심사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술에 취한 상태에서 혼잣말로 불평하는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런 사실 만으로 김씨에게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청주=한덕동 기자 ddah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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