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음악인 김태춘(35ㆍ본명 김태훈)은 최근 낸 새 앨범 ‘악마의 씨앗’에 ‘모든 방송국을 폭파시켜야 한다’는 곡을 실었다. 과격한 제목처럼 노랫말엔 방송국을 향한 불신이 가득하다. 이 곡에서 김태춘은 ‘당신은 저녁 뉴스를 보고 정치를 말하고, 정치가와 자본가는 그에게 지시를 내리고’라며 방송국을 비꼰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때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KBS 보도개입 녹취록 내용이 지난달 공개돼 권력에 좌지우지된 공영방송의 민낯을 보여준 현실을 되돌아 보게 한다.
최근 서울 중구 세종로 한국일보를 찾은 김태춘은 “아버지께서 종합편성채널(종편)만 보시는데, 정치 얘기를 하다 보면 아버지가 종편에 나왔던 보도를 근거로 얘기해 부자간 갈등을 빚은 경험도 곡을 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국에서 ‘먹는 방송’을 쏟아내는 것도 못마땅하다. 김태춘은 “힘든 현실을 이겨내려면 사회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으면서 먹는 방송으로 현실을 외면하게 하고 힐링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려는 게 싫다”고 말했다.
김태춘은 ‘불온’하다. 2003년 낸 1집 ‘가축병원블루스’에서 ‘내 사랑은 롯데캐슬 위에, 내 머리는 하수구 아래’(‘내 사랑은 롯데캐슬 위에’)라고 노래하던 그는 2집에서 자본주의를 ‘대지 위에 종양을 뿌리’는 ‘악마의 씨앗’(‘악마의 씨앗’)취급한다. 마산에서 자란 그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을 넓혀도 노는 날도 없고 손 잘릴 때까지 일하네’(‘뉴 타운 무브먼트 블루스’)라며 농촌의 도시화로 인해 황폐해진 삶의 그늘도 들춘다.
1970~80년대의 대학생들이 시위 현장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부르짖었을 법한 화두들을 ‘00학번’인 그가 다시 외치고 나선 건 “그 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김태춘은 “2000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외환위기가 마무리되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 희망찬 새 시대가 올 줄 알았다”며 “그런데 삼십 대 중반이 돼보니 세상은 더 안 좋아지고 살기는 힘들어져 그런 곡들을 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춘의 노래에는 독기와 저주가 곳곳에 서려 있다. 듣다 보면 영화 ‘곡성’에서 어린 효진(김환희)이 ‘살’을 맞는 고통이 전이될 정도다. 가사가 너무 거칠어 때론 “혐오스럽다”는 눈총을 받으면서도 김태춘이 독한 가사를 쓰는 이유는 하나다. “세상이 그렇고, 이렇게 살기 힘든 데 어떻게 아름답게만 노래를 만들 수 있겠나”는 음악인으로서의 소신 때문이다.
서울 명동에서 기타 강습을 하며 월세살이를 하는 김태춘에게 음악으로 대책 없는 위안을 주는 건 “위선”이다. 그에겐 21세기 한국의 환부를 보여줘 사람들을 더 고민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김태춘이 활동 명으로 1980~90년대 불합리한 권력에 대한 저항이 사라진 시대의 나약함을 꼬집은 민중가수 정태춘의 이름을 빌려 온 이유다.
가사는 거칠지만, 그의 목소리는 익살스럽다. 혁명을 부르짖으면서 미국의 컨트리풍 스타일로 구수하게 노래하는 게 특이하다. 보수적인 멜로디에 얹혀진 진보적인 가사는 마치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보듯 해학을 더한다. 이 오묘한 매력을 먼저 알아 본 이는 가수 이효리다. 그는 김태춘에 연락해 ‘사랑해 부도수표’와 ‘묻지 않을게요’ 등 두 곡을 받아 5집 ‘모노크롬’(2013)에 실었다. 처음엔 고사하려 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과 이효리의 활동 방향이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김태춘은 “가사에 욕이 들어가도 상관 없다더라. 어떤 곡이든 좋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만들어 즐거운 작업이었다”며 웃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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