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열리는 새누리당 전당대회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정치가 성숙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 2008년 전당대회 불법 돈 봉투 살포 파문 등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여전히 불법 조직 동원 의혹에 휩싸여 있다.
정치와 선거에 돈이 드는 것은 민주주의가 치러야 할 비용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지, 국가가 어느 정도 지원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수년간 학계 전문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운동의 자유와 함께 정치자금 모금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의 정치관계법 개정을 모색해왔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은 과거에 비해 우리 선거문화가 개선되었다는 평가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러한 인식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이 동의할지 궁금하다.
필자 또한 선거운동 자유 및 정치자금 모금 자유 확대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금 확대’를 위한 정치자금법 개정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투명성 강화가 이뤄져야 국민적 동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최근 논의되는 정치자금법 개정 내용을 보면 일정 금액 이상 지출 내역에 대한 상시 공개 의무화를 제시하고 있지만, 지금도 정당 국고보조금, 국회의원 후원금에 대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검증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정도의 강도로 통제가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정치자금 모금 확대를 위해서는 훨씬 더 강하고 충격적인 투명성 보장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현행 정치자금제도는 2002년 불법 대선 자금으로 벼랑 끝에 몰린 정당들이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2004년과 2006년 획기적인 정치관계법 개정을 통해 얻어낸 사회적 인고(忍苦)의 산물이다. 정경유착을 막기 위해 법인ㆍ단체의 기부 금지, 불법 정치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지구당 폐지, 불법 금품ㆍ향응에 대한 50배 과태료, 정당후원회 금지 등 강한 충격 요법들을 도입했다. 새로운 제도들의 효과가 나타났고 아직도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개정을 위해서는 좀 더 오랜 사회적 논의와 폭넓은 공감대가 필요하다. 정치자금법 개정의 목표를 ‘고비용 저효율’ 정치의 극복에 둬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논의는 ‘돈 먹는 정치’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으로 2017년 대선 이전에 부활할 정당후원회는 입법 로비와 정경유착 우려를 낳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중앙선관위 개정 의견 초안에 따르면, 정당의 연간 모금ㆍ기부 한도가 공직 선거가 있는 해는 최대 300억원까지로 예상된다. 만약 법인과 단체의 기부가 허용된다면 중앙선관위를 통해 기부하더라도 정당 간 ‘빈익빈 부익부’는 물론이고 기업 및 사회단체에 의한 공공연한 입법 로비는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법 관행을 차단하는 분위기에 자칫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될 수 있다. 정당후원회의 부활이 국회의원의 합법적인 ‘부정 청탁’의 통로가 되지 않도록 충분한 검토와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정당후원회가 부활하면 반드시 현행 국고보조금을 손질해야 한다. 올해 정당들은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을 합해 약 800억원을 국가로부터 받는다. 정당후원회가 부활하면 국고보조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이 당연하다. 당원 확보를 위한 자구 노력에 게으른 정당에 언제까지 엄청난 규모의 혈세를 지급해야 하는지 국민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정당정치 활성화와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그동안 정당들이 보여준 노력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답할 때이다. 그래야만 국고보조금의 존속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우리의 정치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더라도, 정치자금 모금 확대 주장이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2004년 정치관계법 개정과 맞먹는 강력한 투명성 강화 장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ㆍ미래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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