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의 리메이크 또는 속편 바람은 올해도 여지없이 불었다. 하지만 뻔한 공식에 지친 관객들의 뒤통수 제대로 치는 ‘한 방’을 지녔다. 이른바 ‘젠더 스와프’(성별 교환)로 새롭지 않은 이야기에 참신함을 심었다. 남자를 여자로 혹은 여자를 남자로 주인공을 각각 교체해 새로운 볼거리에 집중했다.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25일 개봉)와 ‘국가대표 2’(10일 개봉)가 성별을 바꿔 관객들의 마음을 사려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남주->여주’에 톡톡 튀는 청일점 배치
32년 전 빌 머레이와 댄 애크로이드, 해롤드 래미스 등 괴짜 대학교수들로 귀신 잡는 팀을 꾸렸던 원작 ‘고스트 버스터즈’(1984)가 2016년판에는 여자 박사들로 꽉 채워졌다. 유령 소탕작전의 주인공들은 초자연 현상 전문가 애비(멜리사 매카시)와 물리학 박사 에린(크리스틴 위그), 무기 개발자 홀츠먼(케이트 맥키넌) 등 모두 여자로 바통 터치했다.
주인공들의 성별은 바뀌었지만 원작과 그리 거리가 멀지 않다. 애비, 에린, 홀츠먼 등 유령 소탕작전에 뛰어든 박사들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부츠를 신고 장갑을 착용한 채 해괴망측한 기계를 등에 매고 뉴욕의 거리를 활보한다. 시민들을 괴롭히는 유령을 향해 레이저 광선을 쏘아대는 폼은 원작과 다르지 않다. 원작에 등장했던 먹깨비, 마시멜로 맨 등 유령들은 컴퓨터그래픽(CG)과 시각특수효과로 더욱 사실적인 움직임과 표정을 갖추고 관객들을 맞는다.
하정우 김동욱 김지석 최재환 등이 구성했던 남자 스키점프 국가대표팀(‘국가대표’)의 활약상은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로 꾸며진 ‘국가대표2’로 새롭게 태어났다. 탈북자 출신 리지원(수애), 쇼트트랙에서 강제 퇴출된 박채경(오연서), 전직 피겨요정 김가연(김예원), 아이스하키 협회 경리 출신 조미란(김슬기), 필드하키 선수 신소현(진지희)이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눈물겨운 이야기를 담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점, 급조된 국가대표팀의 구성 과정 등이 전작과 괘를 같이 한다. 실수투성이 국가대표팀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혹독한 훈련을 통해 결국 주위의 인정을 받게 된다는 내용도 닮았다.
‘고스트 버스터즈’와 ‘국가대표2’는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이야기 중심에 서고, 남자 배우는 감초 역할로 바꾸었다. 영화 ‘토르’와 ‘어벤져스’에서 근육질 몸매를 뽐내며 ‘상남자’ 포스를 자아내던 크리스 헴스워스는 ‘고스트 버스터즈’에서 눈치 없고 백치미를 지닌 역할을 맡아 웃음을 책임지게 된다. 영웅 토르가 시종일관 재잘거리는 남자 비서로 등장한다는 점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다.
‘국가대표2’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의 감독 감대웅으로 출연한 오달수 역시 톡톡 튀는 청일점이다. 실력 없는 아이스하키 선수가 국가대표팀에 몸담아 본 과거만으로 감독으로 초빙된다는 설정이다. 실력이 없으니 선수들을 제대로 훈련시킬 리 만무하다. 링크에서 힘들게 훈련하는 선수들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가 하면 매일 밤 술타령이다. ‘오달수표’ 코믹 연기는 믿고 봐도 후회하지 않는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주인공이 바뀌는 현상을 두고 “티켓 판매를 주도하고 있는 여성 관객층에 어필하려는 영화계의 변화”로 보는 시선도 있다. CGV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연령대별 티켓 점유율은 여성(61.3%)이 남성(38.7%)보다 더 높았다. 이 중 20대 여성이 39.1%로 가장 높았다.
한 영화평론가는 “여성 관객들의 영화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코드에 맞추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소재 고갈과 함께 흥행요소에 고민하는 영화산업계가 이를 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할리우드는 ‘젠더 스와프’ 고민 중
1984년 20대의 톰 행크스가 주연한 로맨틱코미디 영화 ‘스플래시’도 32년 만에 주인공의 성별을 탈바꿈해 출시된다. 헴스워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근육질 시선강탈자’ 채닝 테이텀이 인어 왕자로 변신할 예정이다.
원작은 진정한 사랑을 찾는 성공한 청년 사업가 알렌(톰 행크스)과 인간을 사랑하게 된 인어 아가씨 매디슨(다릴 한나)의 꿈같은 사랑을 그렸다. 원작을 연출한 론 하워즈 감독이 이번 리메이크 영화도 메가폰을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녀 주인공의 역할이 교체된 현대판 ‘스플래시’는 코믹 연기로 인기를 얻은 질리언 벨과 근육질 인어왕자 채닝 테이텀이 조합을 이뤄 벌써부터 국내외 팬들의 눈길을 받고 있다. 영국 일간 메트로는 최근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테이텀이 인어로 변신한 충격적인 합성사진을 공개해 네티즌들 깜짝 놀라게 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캐릭터도 ‘젠더 스와프’이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5월 영화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아예 대놓고 울버린(휴 잭맨)의 성별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16년 간 ‘엑스맨’을 대표했던 돌연변이 울버린을 여성으로 내세울 것을 마블 스튜디오와 협의 중이라고 내용이었다. 벌써부터 ‘데드풀2’(2018년 개봉 예정)에 등장하는 특급 카메오 울버린이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도 언제 여자 본드가 등장할 지 모른다. ‘007 스카이폴’과 ‘007 스펙터’ 등에 출연했던 대니얼 크레이그가 ‘007’ 시리즈에서 하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차기 본드 역할에 여러 배우들이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남자가 아닌 여자 본드가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움직임도 있다. 미국 드라마 ‘X파일’로 유명한 영국 출신 배우 질리언 앤더슨은 얼마 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의 사진을 합성한 007 영화 포스터를 게재했다. 팬들이 그를 “차기 007 제임스 본드로 추천”한다며 포스터를 만들었고, 앤더슨은 “본드입니다. 제인 본드”라고 응했다. ‘젠더 스와프’ 바람이 더 거세진다면 여자 스파이 007을 볼 수 있을 날도 멀지 않을 듯하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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