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인기를 끈 ‘8ㆍ15 콜라’가 다시 나온다고 한다. IMF의 가혹한 처방에 온 국민이 신음하던 당시 ‘콜라 독립’을 모토로 내세운 8ㆍ15 콜라는 애국주의 정서를 탔다. 맛은 별로였지만 사회 분위기 상 외면할 수 없어 몇 번 사 마신 기억이 난다. 금 모으기 운동,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한 아래아 한글 사용 확대와 같은 민족주의가 기세를 떨친 한편으로 영어 공용화론, 다국적기업에 대한 우호적 인식도 확산된 혼돈의 시기였다.
▦ IMF 위기는 애초 외환위기였지만, 금융위기에 이어 실물경제 붕괴로까지 이어진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비 없이 자본시장을 개방한 탓이 컸다. 김영삼 정부 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자 금방 선진국이 될 것처럼 환호했으나 결과적으로 외환관리에 제약을 받으면서 IMF 위기를 부르는 원인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IMF 체제하에서 정권을 시작한 김대중 대통령이 ‘강요된 세계화’를 적극 수용하면서 IMF식 처방을 거부한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와 아시아적 가치를 놓고 논쟁한 것도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 2001년 8월 차입금을 전액 상환하면서 3년 8개월 만에 IMF 체제에서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는 그 때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엄혹한 IMF 체제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와 가정을 잃으면서 사회는 양극화하고, 공동체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 노사간 이념간 갈등 등 지금 우리가 직면하는 온갖 불신과 대립의 뿌리도 거기에 닿아있다.
▦ 최근 발표된 한국의 ‘사회적 결속’ 지수가 4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전체 조사대상 61개국 중 44위를 기록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의지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느냐’를 묻는 사회적 관계 지수에서도 30% 가까이가 부정적으로 답해 OECD 회원국을 포함한 36개국 중에서 가장 나빴다. 그러잖아도 우리의 사회갈등 지수는 매년 OECD 최고 수준이고, 갈등 해소비용도 국내총생산(GDP)의 27%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정치ㆍ제도에 대한 공적 신뢰 붕괴에 이어 개인간의 신뢰도 무너지는 징후다. 우리 사회의 각자도생,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이 바뀌지 않는 한 IMF 졸업은 아직 요원하다.
황유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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