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수천억원을 탈세한 정황이 지난 주 검찰 조사로 드러남에 따라 과세당국인 국세청이 체면을 구기게 됐다. 국세청은 몇 년 전부터 롯데 핵심 계열사를 잇달아 조사했지만, 신 총괄회장의 이 같은 탈세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신 회장의 탈세 행태가 국세청이 최근 조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역외탈세라는 점에서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7일 검찰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검찰 조사에서 밝혀진 것은 신 총괄회장의 지시에 따라 해외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6,000억원 이상의 증여재산을 숨기고 증여·양도세 3,000억원 이상을 탈루한 혐의다. 지금까지 적발된 증여ㆍ양도세 탈루액 중 최대 규모다.
국세청은 상당히 난감한 눈치다. 국세청은 2013년 기획조사를 전담하는 서울국세청 조사4국 등을 투입해 롯데그룹 핵심인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에 대해 세무조사를 했으며,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는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롯데건설, 대홍기획 등을 잇달아 조사했다. 하지만 2013년에는 “일본 롯데와 해외 법인 등을 이용한 탈세 혐의는 없었다”며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만을 적발하는데 그쳤고, 지난해 조사에서도 역시 탈세와 관련한 이렇다 할 조사 성과를 내놓지 못했다. 핵심 계열사들을 샅샅이 뒤졌음에도, 역대 최대 규모의 탈세를 그냥 지나친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것은 국세청이 파악하기 어려웠던 부분”이라고 해명했다. 탈세를 위해 일본 롯데홀딩스 주식이 거래됐기 때문에 국내 조사로는 밝히기 쉽지 않은 사안이라는 항변이다. 그러나 대기업 수사에 정통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대기업일수록 해외 주식 거래 등을 이용한 정교한 구조의 탈세가 이뤄지기 마련”이라며 “해외 거래여서 밝히기 힘들었다는 건 변명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세종=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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