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살인사건으로 복역 중
교도소에서 DNA 채취로 들통
성폭행 후 살인, 혈흔도 발견
동료 재소자에 ‘강간ㆍ살해’ 언급
檢, 법의학 동원 미제사건 풀어
피해자의 32번째 생일날 기소
영구미제 사건으로 묻힐 뻔한 전남 나주 드들강 여고생 성폭행 살인사건의 범인이 사건 발생 15년 만에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광주지검 강력부(부장 박영빈)는 이 사건의 범인 김모(39)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살인 등) 혐의로 5일 기소하고, 위치추적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청구했다고 7일 밝혔다. 검찰이 김씨를 기소한 날은 A양이 살아 있다면 32번째 생일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2001년 2월 4일 오후 나주시 드들강변에서 여고생 A(당시 17세)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어른 발목 높이의 강물에 알몸으로 엎드린 자세였다. 사인은 익사였지만 A양의 몸 속에선 정액(DNA)이 검출됐다. 이후 이 사건은 ‘드들강 여고생 성폭행 살인사건’으로 불렸다.
그러나 미궁에 빠지면서 잊혀져 가던 이 사건은 2012년 8월 대검찰청이 A양의 체내에서 검출된 정액 DNA와 김씨의 DNA가 일치한다는 결과를 내놓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시 김씨는 2003년 광주 동구에서 발생한 전당포 주인 강도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목포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김씨의 DNA 채취는 2010년 일명 ‘DNA법’이 시행되면서 이뤄졌다.
재수사에 나선 경찰은 같은해 10월 김씨에 대해 기소의견을 내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2년 뒤 김씨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A양과 성관계를 한 것 같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성관계를 맺은 시점도 기억이 안 난다”는 김씨의 주장을 깨고 그를 살인죄로 옭아맬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체내 정액 검출 기간이 3~4일 되는데, 김씨가 A양 사망 3~4일 전에 A양과 성관계를 했다고 발뺌해 기소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액 검출 기간은 되레 김씨를 범인으로 특정하는 단서가 됐다. 올해 2월 검찰이 경찰과 합동으로 전면 재수사에 나서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이 A양의 주검에서 정액과 A양의 혈흔도 함께 채취했고, 문제의 혈흔이 A양의 생리혈인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김씨가 3~4일 전 A양과 성관계를 했다면 김씨의 정액은 당시 생리 중인 A양의 생리혈과 함께 배출돼 A양의 주검에 남아 있을 수 없다며 김씨를 몰아붙였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A양은 성폭행을 당한 직후 살해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법의학 재감정 결과까지 얻었다.
이후에도 검찰은 재수사 후 김씨의 행동 반응 등을 살펴보기 위해 수감 중인 교도소 수용실을 압수수색하고 동료 재소자 350여명 대해 전수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이를 통해 김씨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할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범행 당일 오후 전남 강진에 가 여자친구와 사진을 찍었고, 동료 재소자에게 “내가 여자를 강간한 후 살해했다. 그러나 이 사진들 때문에 검찰이 나를 기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법정에서도 혐의를 부인할 것으로 예상돼 수사검사를 직접 공판에 참여시키고 부검의와 법의학자 등 전문가들의 증언 공개 등을 통해 공소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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