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가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교육부 주도하에 추진되던 미래라이프대학설립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대학본부 점거농성과 그 후의 일련의 사태 때문이다. 사실 학내의 이슈로 인해 학생들이 대학본부를 점거해서 자신들의 의사표시를 하는 일은 이번 외에도 다른 대학들에서 가끔 있었지만 이번처럼 그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논란이 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우리나라 대학교육 현실이 처해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 대학 대부분의 재정적 자립도가 매우 낮은 상황에서, 문제가 되었던 미래라이프대학사업 등과 같이 교육부가 재정지원을 매개로 대학의 운영에 개입하려고 하면 헌법상 보장된 대학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
인류가 역사와 문화를 이루면서 살아오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져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제도 중 하나가 대학이라는 사실과 선진국 대부분의 헌법이 특별히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학문의 공동체로서 대학이라는 공간 속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강의와 연구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창출하는 과정은 겉으로는 미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긴 흐름 속에서 보면 결국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그 지적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진 사유의 힘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변화로 인해 대학의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졸업 후에 바로 취업에 도움이 되는 지식의 습득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 부분을 교육부가 지나치게 전면에 나서서 주도하는 것은 결국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의 담당 간부 한명의 판단에 의해 교육정책이 결정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최근에 생생하게 경험한 바 있다. 실제로 지원금을 매개로 대학 정원감축 및 부실대학 퇴출을 위한 교육부의 정책은 그 목적과는 반대로 우수한 대학의 정원감축과 부실대학의 정원확대 혹은 유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처럼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각 대학이 졸업생의 취업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들이 지나치게 취업률에만 연연하거나 교육부가 예산지원을 빌미로 그 방향으로 지나치게 유도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큰 문제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우수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산업화시대에 필요한 정형화된 지식의 빠른 습득을 통해 제조업 분야에서 생산성을 확보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앞으로 펼쳐질 세상에서는 그와 같은 방식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구글 애플 우버 테슬라 등의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느 공동체의 부는 기계적이고 정형화된 지식을 많이 습득한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과 창의력을 갖춘 사람들에 의해 훨씬 많이 창출되고 있다. 이러한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교육부 관료 한두 명의 머릿속에서 나온 설익은 교육정책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대학에서의 지적 탐구와 사유의 과정은 실속이 없고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역사와 사회의 진보는 결국 그 탐구와 사유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어느 상황에서나 대학의 자율성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하고 대학이라는 지적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지적 탐구와 공상, 그리고 사유의 가치가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물론 교수를 포함한 대학의 구성원들도 과거의 지식과 현실의 안정감에 안주해서는 안 될 것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혁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헌법적으로 보장되는 대학의 자유에 비례해서 스스로 더 엄격한 연구윤리를 준수해야 할 것이고 책임 있는 자세로 지식의 창출과 전수를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대학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고 나아가야 할 길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