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짜리 인형탈 쓰고 땀 줄줄... 행인들의 짓궂은 손에 놀라기도
“여름철 최악의 알바 1위”
1시간30분 홍보하고 30분 휴식
탈 쓰고 용변을 보는 일도 고역
“시급 1000원 더 쳐주니 일하죠”
찜통 더위가 절정으로 치달은 4일 오후 1시30분,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앞. 분주히 오가는 인파 사이에서 기자는 인형탈을 쓰고 서 있었다. 10분이나 지났을까. 목덜미 뒤로 연신 흐르는 땀은 이미 온몸을 적셨고, 탈 내부의 퀴퀴한 냄새는 계속 코 끝을 괴롭혔다. 이날 서울 낮 최고기온은 36도. 하지만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와 모피코트나 다름없는 인형탈의 보온(?) 효과까지 더해져 체감 온도는 40도를 훌쩍 넘겼다.
몇 년 전부터 인형탈을 활용한 홍보 효과가 크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카페와 음식점은 물론 각종 전시회에서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찾는 수요가 급속히 늘고 있다. 기자도 이날 한 고양이 전문카페를 알리기 위해 고양이 탈을 뒤집어 쓰고 호객에 나섰다.
인형탈 안에서는 양쪽 눈 위치에 뚫린 1㎝ 크기의 구멍을 통해서만 바깥 세상을 볼 수 있다. 역 입구 반경 10m 거리를 7시간 동안 돌아다니는 것이 이날의 임무다. 시작한 지 몇 십분도 안돼 주차금지봉, 건물 계단에 부딪쳐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3.5㎏짜리 탈 무게가 서서히 어깨를 짓눌렀고 1시간쯤 지나자 다리도 저려왔다. 한 행인이 “힘내라”며 음료수를 건네주자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나 대다수 행인들은 호기심 탓인지 손으로 아무데나 쓰다듬고 쿡쿡 찔러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민감한 신체 부위를 만지는 ‘못된 손’을 만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르바이트는 1시간30분 동안 거리 홍보를 한 뒤 30분 쉬는 방식이지만 휴식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탈을 쓰고 용변을 보는 일은 힘든 정도가 아니라 숫제 고역이었다.
아르바이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대학생 김모(21)씨는 한 달 가량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몸무게가 25㎏이나 빠졌다. 김씨는 “얼마 전 두드러기가 나 병원에 갔더니 탈을 안 쓴 부분이 햇빛에 장시간 노출돼 피부 발진이 생겼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뒀다”고 말했다. 최근 구직사이트 알바몬이 1,34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인형탈은 여름철 최악의 아르바이트 1위로 꼽히기도 했다.
그래도 젊은이들은 인형탈 아르바이트 자리를 수소문한다. 돈 때문이다. 특히 여름철에는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최소 시간당 1,000원 이상을 더 쳐준다. 이날 처음 인형탈 아르바이트에 도전한 취업준비생 이모(21)씨는 “최저시급 6,030원만 지급하는 다른 아르바이트와 달리 인형탈 일은 7,000원까지 준다”면서 “한 푼이 아쉬운 청춘들에게 1,000원은 큰 돈”이라고 말했다.
업무 마감을 10분 남겨둔 오후 8시20분. 어둑해진 거리에 전신을 검은색 타이즈로 감싼 낯선 형체들이 나타났다. 몸 앞 뒤에 영어학원 광고판을 붙인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나이는커녕 성별도 분간하기 어려운 광고판에서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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