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지방선거 개표
‘反아파르트헤이트’ 적자 ANC
경제ㆍ실업난에 가까스로 과반
ANC 본산 넬슨만델라베이 잃고
대통령 고향서도 野가 의회 장악
“흑인, 더이상 무비판적 지지 안해”
여촌야도 현상 가속화 지적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방선거에서 장기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역대 최악의 선거결과를 맞이하게 됐다. 경제침체와 높은 실업률에 제이콥 주마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반(反)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운동의 적자인 ANC를 굳건히 지지하던 남아공의 민심도 돌아서고 있다는 징후로 평가된다.
3일(현지시간) 열린 지방선거에서 ANC는 선거 전체 득표율 54%로 85개 지역의회를 장악해 선두를 차지했다. 그러나 시장자유주의 성향의 제1야당인 민주동맹(DA) 역시 26%를 얻어 18개 지역구를 장악하면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위 좌파 성향의 경제자유전사(EFFㆍ8%)가 지역의회를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전체득표에서 약진한 것도 눈에 띈다. ANC의 득표율이 전체 60% 이하로 떨어진 것은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가 폐기되고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지역별로 봐도 ANC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주요도시 중 남해안 케이프타운과 포트엘리자베스를 포함한 넬슨만델라베이 시장직을 DA가 차지했고 내륙의 행정수도 츠와네(프리토리아)와 요하네스버그에서는 ANC측 후보가 미세하게 앞서고 있지만 접전 중이다. 주마 대통령의 고향인 콰줄루나탈주 은칸들라에서는 줄루민족주의 성향 인카다자유당(IFP)이 지역의회를 장악해 주마 대통령의 체면을 구겼다. 은칸들라는 주마 대통령이 공금을 유용해 호화 사저를 건설한 곳이다.
특히 넬슨만델라베이 시장을 DA소속 백인 정치인 애톨 트롤립에게 내 준 것은 ANC입장에서 뼈아픈 패배다. 넬슨만델라베이는 ANC의 총본산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영국 BBC방송은 “이번 선거 결과는 다수의 흑인들이 더 이상 ANC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은 주로 경제적 이유로 변화를 열망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주마 정권 아래에서 실업률이 25%에 이르고 성장률은 1%에 머무는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DA는 ‘부패 척결’ ‘더 나은 공공서비스’ ‘더 나은 직장’을 주요공약으로 내세워 무능한 주마 정권에 실망한 도시지역의 젊은 유권자들을 집중 공략했다. DA의 첫 흑인 대표인 음무시 마이마네는 현지 702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선거에서 당세가 크게 확장됐다”며 “이 선거는 주마 대통령을 심판하는 선거이자 동시에 남아공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거”라고 평가했다.
반면 ANC는 지난 6월 행정수도 츠와네에서 당중앙이 전 농경토지부 장관 토코 디디자를 시장후보로 지명하자 이에 반발한 일부 당원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등 내우외환으로 곤란에 처해 있다. 노무라증권의 피터 아타드 몬탈토 분석가는 “ANC는 여전히 농촌 지역에서 지지율이 높지만 도시에서 급격히 지지기반을 상실하면서 농촌지역만의 정당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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