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방송ㆍ영화가서 줄퇴짜
지난달 초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 관계자들이 한 지상파 방송사를 찾았습니다. 전 국민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하다 드라마를 활용해 보자는 의도였습니다. 드라마는 주부와 노년층 등 보이스피싱의 주요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이 주 시청자여서 예방 효과가 높고, 재방송은 물론 케이블TV를 통해서도 꾸준히 전파를 타기 때문에 효과도 지속적일 것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드라마에 사고 빙자, 금융당국 직원 사칭 등 보이스피싱 주요 사례를 넣는다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도 마련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드라마 제작 관계자들을 만났지만, 협상은 어그러졌습니다. 제작비 협찬 때문이었습니다. 방송사 측은 1억원대가 넘는 협찬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원래 더 높은 수준인데 금융당국이라 대폭 할인해주는 것이라는 말도 들었답니다. 보이스피싱 예방 홍보 예산이 연간 5,000만원 수준인 금감원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금액이곘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금감원이 찾은 곳은 방송사만이 아닙니다. 2014년 하반기부터는 국내 주요 영화관 운영사와 영화 상영 전 ‘공익광고’를 붙이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 대형 영화관 운영사는 수익광고가 많은데 공익광고를 상영할 여지가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영화 상영 전 광고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관객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도 덧붙였습니다.
금감원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A통신사의 비협조입니다. 전화로 이뤄지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특성상 통신사의 협조는 필수적입니다. 실제 B통신사의 경우 보이스피싱 사기가 이뤄진 전화번호를 등록, 자사 고객에게 이 번호로 전화가 가면 ‘보이스피싱 의심전화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띄워주고 있습니다. 금감원은 A통신사 관계자와도 몇 차례 만나 같은 방식의 협조를 구했는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같은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어플리케이션(앱)이 필요한데 보이스피싱 예방만을 위한 앱을 만들 수는 없다고 했다는 군요.
실패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최근 케이블방송 OCN의 드라마 ‘38사기동대’와 손잡고 보이스피싱 예방 홍보에 나선 것이 대표적입니다. 금감원이 운영하는 ‘보이스피싱 지킴이’ 사이트와 ‘38사기동대’ 홈페이지를 연계한 수준이지만, 그간의 고군분투를 생각하면 금감원으로서는 감개가 무량한 상황인 셈입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날로 수법이 진화하면서 서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데요.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1만1,314명에 이르고, 그 피해액도 733억원에 달합니다. 피해를 줄이려면 예방 홍보가 절대적이겠죠. 금감원의 보이스피싱 예방 홍보를 위한 분투가 크고 작은 결실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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