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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지나면서 본격 한치 잡이 철
해질녘 서귀포 바다로 낚싯배 출항
시원한 바람 황홀한 풍경에 고기 놓칠뻔
선상 즉석 회 맛 어디에 비할 수 있나
한달 여 긴 여정의 장마가 끝나고, 아침 저녁으로 서귀포 해안도로에서 번영로까지 짙게 드리워졌던 바다 안개(해무)도 사라졌다. 마을 포구에서는 낚시를 준비하는 어부들의 분주한 손놀림이 맑게 개인 날씨처럼 흥겨워 보인다. 서귀포의 여름에는 바람이 남쪽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불게 되는데 이로 인해 습기를 많이 지닌 공기가 바다에서 육지로 이류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새벽이나 밤에는 비교적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찬 지면 위를 지나가면서 냉각되고 포화되어 짙은 해무가 발생한다. 한라산 역시 연안에서 이류되는 공기가 높은 산을 타고 강제 상승하면서 안개에 휩싸이게 되고 5ㆍ16 도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구름 속의 길이 되어 버린다.
장마와 해무를 지나 모처럼 맑게 개인 8월의 저녁에 회사 동료 아버님의 고깃배가 정박중인 성산의 신양 포구에서 서귀포 여름의 또 다른 추억거리인 바다 밤 낚시를 떠났다.
서귀포 연안에는 마을마다 크고 작은 많은 포구들이 자리잡고 있다. 한림항이나 서귀포항과 같은 큰 규모의 항구에서는 매일 당일바리 생선의 경매가 이루어져 대부분의 배들이 경매 시간에 맞추어 이른 새벽에 입항하는데 비해 포구의 작은 어선들은 선주 혼자서 배를 운행하는 경우가 많아 출항 시간이나 입항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2~3톤 이하의 소형 고깃배가 주를 이루는데 어획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포구 근처의 식당이나 중매인에 팔거나 가족을 위한 반찬 거리를 마련하는 정도로 낚시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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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톤 규모의 배에 세 명 정도가 승선한다. 동료 아버님의 배가 1.6톤 크기라 ‘울릉도 벵에돔 낚시 대회’ 우승자인 후배 한 명을 포함하여 네 명이 밤낚시에 참여했다. 설렘을 안고 신양 포구를 출발한 배는 성산 일출봉 근처에 닻을 내리고 본격적인 조업을 시작했다. 요즈음에는 작은 고깃배에도 어군 탐지기가 설치되어 수온이나 수심, 생선의 흐름을 알 수 있는데 성산포 물길에 익숙하신 칠순의 선장님께서는 G.P.S기계보다는 자기만의 오랜 경험을 더 신뢰하시는 듯하다.
닻을 내려 배가 정지하게 되면 우선 낚싯대와 주낙을 점검해야 한다. 주낙은 연승(延?)이라고 해서 낚싯대 없이 연의 얼레처럼 긴 줄에 미끼를 여러 개 끼워 조류에 흘러 보낸 뒤 물고기의 입질이 확인되면 낚아 올리는 어법이다. 외줄 낚시에 비해 어획 가능성이 높아 어부들은 선호하나 손맛을 즐기는 전문 낚시꾼들에게는 낯선 도구이다. 혼자서 조업을 할 때는 배의 양쪽에 주낙을 두 개씩 걸고 가운데에도 두 개의 낚싯대를 세워 일을 하시는데 많이 잡힐 때는 혼자 낚아 올리기도 벅차다고 하신다.

8월의 찌는듯한 무더위로 낮 시간에는 조업이 어렵고 생선의 움직임도 좋지 않아 새벽이나 해 저문 저녁부터 고깃배를 몰고 나오신다고 한다. 성산 일출봉을 뒤로 하고 한라산 방향으로 멋스러운 다랑쉬 오름의 꼭대기에 저녁 해가 걸릴 때 물고기를 많이 낚을 수 있다고 하신다. 시원한 여름 밤바람과 오름의 풍경에 빠지다 보면 물고기를 놓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신다. 예견이 맞았는지 다랑쉬 오름 위로 멋진 저녁 노을이 번지는 순간 많은 입질이 왔고 순식간에 많은 한치를 낚을 수 있었다. 열 개의 미끼를 단 주낙에 8~9마리를 한 번에 낚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아마추어 수준이라 네 다섯 마리로도 무척 행복해 했다. 밤이 깊어 가며 바다 바람과 함께 성산의 섬 풍경이 더욱 운치 있게 느껴졌다. 사실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자들은 주낙에 생선 한 두 마리 걸린 경우에는 감지를 못하기 때문에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배 낚시 즐거움의 정점은 바로 잡아 올린 생선을 선상에서 즉석으로 해먹는 음식에 있다. 배의 규모가 작아 불을 피워 음식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도마와 칼, 김밥 정도를 챙겨 갔다. 팔딱팔딱 힘차게 요동치는 한치를 두툼하게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 김밥 위에 올려 ‘군함 마끼’처럼 만들었는데 한치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과 단백함이 웬만한 파인다이닝 부럽지 않은 독특한 맛을 냈다. 서귀포 시내의 한 분식점에서는 ‘찍어 김밥’이라고 해서 김밥과 오복채, 초장을 함께 내어 주기도 한다. 이 찍어 김밥은 소위 ‘제주 몇 대 김밥’에 뒤지지 않는 맛이지만 선상의 한치 김밥에만큼은 따라오기 어려울 것 같다.

두 서너 시간의 조업을 마치고 어획량을 보니 네 명이 한치 15kg, 고등어 한 마리, 학꽁치 한 마리 정도였다. 중간에 한치 떼가 지나갈 때 주낙이 엉켜 놓치긴 했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멀미 약 덕인지 배 멀미를 하지 않고 따라와준 것이 가장 다행이라고 하신다. 돌아오는 길에 낚시꾼 후배에게 조타를 맡기고 급하게 한치 손질을 하시기에 활 한치로 파셔야 이익이 많이 남지 않겠냐고 여쭈어 보자 깔끔하게 손질해 줄 테니 다 가져가라고 하신다. 날씨가 좋지 않아 뱃일도 많이 못하셨을 것 같아 만류하자 바다가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본인에게는 매일 나올 수 있는 바다이니 이웃에게도 나누어 주려면 다 가져가라고 하시면서 한치 다리는 미끼로 쓸 때가 있으니 그것만 놓고 가라고 하셨다. 기름값을 여쭈니 걱정하지 말라시며 그저 말벗 해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장마 때는 풍랑의 위험이 있고 짙은 해무가 끼면 선박끼리 충돌의 위험이 있어 조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서귀포에서는 이맘때 한치 가격이 가장 비싸다. 8월에는 뱃일도 활발해져 대략 절반 가격에 많은 관광객들이 한치 요리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어부에게 바다는 날씨가 좋아도 배 걱정, 날씨가 좋지 않아도 배 걱정이라고 한다. 낡은 고깃배는 수리 할 데가 많아 모처럼 날씨가 좋은데도 조업을 못 나갈 것 같아 걱정이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아예 바다로 나갈 수 없으니 걱정이라는 한숨이다. 밭에 나가도 필요한 만큼만 수확하고 산에 올라 고사리를 채취할 때도 남이 캘 것은 남기고 내려오는 것처럼 욕심 없이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 제주도 어부의 바다인 것 같다.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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