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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리우의 두 얼굴

입력
2016.08.0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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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는 지형적 조건부터 드라마틱했다. ‘설탕빵’ 봉우리에 오르면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간 역동적인 아름다움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4㎞가 넘는다는 코파카바나 해변에는 비치발리볼을 즐기는 청년들과 일광욕을 즐기는 미녀들이 즐비했다. 때마침 삼바 축제 기간이라 도시 전체가 광란의 춤판이었다. ‘대목’이라는 개념조차 없는지, 다들 장사는 때려치우고 먹고 마시고 춤추는데 몰입 중이었다. 모두가 ‘조르바’였다. 그 풍경을 즐기면서도 나는 긴장을 잃지 않았다. 은행의 자동입출금기(ATM)를 사용할 때도 나는 리우 최고의 부자 동네에서도 건물 깊숙이 들어있는 ATM에서 돈을 찾을 정도였다. 사흘 후, 북쪽 도시의 침대에서 눈을 떠 인터넷 뱅킹을 하던 나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여행경비가 들어있던 내 통장의 잔고가 0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통장 잔고가 0이 되기는 처음이었다. 카드 복제로 전액을 털어가다니 놀라운 솜씨였다. 더 놀라운 건 투숙객이라곤 스무 명 남짓 머물던 그 숙소에 나와 똑같이 당한 이들이 세 명 더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상 최대의 축제와 파티의 도시는 치안 부재의 도시이기도 했다. 리우는 소매치기 같은 가벼운 범죄부터 무장강도나 살인 같은 강력범죄 발생률까지 세계 최상위권이었다.

두 번째로 겪은 리우의 야누스적 얼굴은 미술관에서였다. 브라질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에르가 설계한 니테로이 미술관은 바다 위에 뜬 우주선인 듯 경이로웠다. 카펫이 깔린 전시장을 둘러보던 나는 그날 마신 음료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일사병이었다. 하필 내가 마신 건 아마존 정글에서만 자란다는 아사이 열매였다. 진한 팥죽색 얼룩이 회색 카페트를 뒤덮는 순간,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안내 직원이 달려와 괜찮으냐며 나를 부축하는 일과 청소를 하던 분이 내게 삿대질을 하며 장마철 폭포처럼 웅장한 욕설을 퍼부은 일. 내 평생 그토록 화려한 욕설의 잔치는 처음이었다. 어쩔 줄 모른 채 사과를 거듭하며 서 있는 나를 끌어낸 건 안내 직원이었다. 사무실로 나를 데려간 그녀는 물을 건네며 잠시 숨을 돌리게 한 후, 지하의 카페에 전화를 넣고 나를 그곳까지 직접 데려다 줬다. 여기서 푹 쉬다가 괜찮아지면 가라고 당부하면서.

세 번째로 마주한 리우의 명암은 극심한 빈부차였다. 계층 간 소득 불평등 수준을 말하는 지니계수에서 브라질은 늘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다. 리우는 그 격차가 더 심해 인구의 19%가 파벨라라는 빈민촌에 거주했다. 나는 리우 관광 정책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파벨라 투어’에 나섰다. 파벨라 투어는 마약과 범죄의 소굴이었던 이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적인 공간임을 보여주고, 빈민가의 여성과 아이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왔다. 빈민촌을 향해 언덕을 오르는 내내 대서양을 향해 늘어선 거대한 저택들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높다란 담벼락에 둘러싸여 따라왔다. 그 부촌의 꼭대기가 빈민촌이었다. 감전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엉망으로 꼬인 전깃줄 사이로 마구 지어 올린 가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 바로 아래로 펼쳐지는 저 부촌을 바라보며 이 동네의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싶었다.

환락적인 축제와 성스러운 종교, 온갖 범죄와 따스한 인정이 실핏줄처럼 엉켜있는 도시 리우에서 오늘부터 올림픽이 열린다. 자기 자신과 조국의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할 선수들과 기자단, 그리고 브라질을 여행하는 이들이 온몸과 마음으로 리우를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범죄율 수치에 놀라 허겁지겁 도망치기에는 리우는 너무 사랑스러운 도시니까. 이파네마 해변을 바라보며 브라질 삼바 거장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의 명곡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를 들을 수만 있다면 나는 다시 한 번 지갑이 털린다 해도 감당할 각오가 되어있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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