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
심재훈 지음
푸른역사 발행ㆍ330쪽ㆍ1만8,000원
정신승리법에 따른 나르시시즘 민족주의 역사, 소위 ‘국뽕’ 역사의 전성시대다. 보수ㆍ진보, 여ㆍ야 구분 없이 ‘위대한 상고사’에 대한 열망은 노골적이다. 모든 얘기가 ‘우리 조상은 훌륭했어요’란 돌림노래의 무한반복인 설민석의 강연이 인기를 끌더니, 그의 책 ‘조선왕조실록’도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예전부터 쭉 이어지던 국뽕 영화 목록에 ‘인천상륙작전’이 이름을 올리더니 ‘덕혜옹주’도 국뽕 여부가 관심이다.
이해할 법한 구석도 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너무 덥다 보니, 다들 역사로 피서를 떠나는 거다. 바가지가 좀 있다 한들 어떠리. ‘꿈의 역사’란 파는 사람에겐 높은 이윤을, 사는 사람에겐 그에 걸맞는 만족감을 보장해주니 말이다. 어찌 보면 피서란, 이미 일정 수준의 바가지에 대한 암묵적 합의 아니던가. 다만 피서는 한철 장사임이 명백한데, 역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이 상황에서 심재훈 단국대 교수가 내놓은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는 망치 같은 책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의 발목이 잠겨 있는, 민족주의적 시각을 깨뜨린다. 가령 과학사에서 저자는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학자로 김영식(서울대)을 꼽는다. 그런데 김영식은 해외 학계에 발표한 영어 논문을 번역해서 낸 ‘동아시아 과학의 차이’(사이언스북스) 같은 책에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과학에 밝았네, 근대에 근접했네 하는 국사학계ㆍ국문학계 주장을 에누리 없이 모두 비판하는 학자다.
지난 1월 백제 사비성터에서 발굴된 1,500년 전 구구단 목간은 어떤가. ‘우리 수학은 오래됐고 일본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18번 레퍼토리에 딱 맞는 소재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는 2,300년 전 이미 이보다 훨씬 정교한 곱셈표를 사용했음이 밝혀져 2014년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는 얘기엔 무관심하다.
그렇기에 서양사에 기반을 두고 탈민족주의 입장에서 국사학계를 호되게 비판하는 임지현(서강대)ㆍ김기봉(경기대)을 높이 평가한다. 이영훈(서울대)으로 대표되는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평도 좀 다르다. 일을 “진행해온 방식과 실력”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민족주의 열풍에 반기를 든 “용기는 평가 받을 만한 부분”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건 재미학자 배형일에 대한 언급이다. 배형일은 한나라가 설치한 낙랑군이 한국 고대국가 성립에 원형질을 제공했으리라 본다. 저자는 이 연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하진 않으면서도 미국 학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은 이 연구 성과가 왜 한국에서만 소개되지 않았는가 되묻는다. “낙랑에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일제의 식민사학을 먼저 떠올리고 의도적으로 무시했을 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재야사학자라는 이들이 “강단사학자들은 반민족적인 식민사학자들”이라고 제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비판해봤자, 저자가 보기엔 강단사학자들은 이미 충분히, 그것도 아주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히 민족주의적이다. 아예 ‘식민사학 vs 민족사학’이란 대립 구도를 ‘소극적 민족사학 vs 적극적 민족사학’으로 바꾸는 게 옳다는 제안까지 내놓는다.
그런데 이 ‘적극적’이란 표현이 묘하다. 적극적은 좋다는 뜻이 아니다. 선진사(先秦史) 전공자로 고대사에 밝은 저자의 강점이 여기서 확연하다. 재야사학의 상고사 뻥튀기 작업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문장을 직접 옮기면 이렇다.
“사마천이 사기를 편찬한 연대가 기원전 2세기말~1세기 초 정도이니, 그 이전에 조선을 언급한 중국 측 기록은 글자 수로 따지면 아마 100자 남짓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상고사 연구라는 게 경우에 따라서는 이 100자를 어떻게 짜집기하느냐는, 아주 천박한 수준으로 떨어지곤 한다. 여러 복잡한 문헌자료가 있어 “어느 정도 전문적 훈련을 거친 뒤에야 접근이 가능한 다른 시대와 달리 고조선 연구는 단편적으로 남겨진 사료의 조각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한다. 그러한 여건 때문에 누구라도 비교적 쉽게 연구에 뛰어들 수 있는 영역이 돼버린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모두가 제 마음대로 떠들어대다 산으로 가버린 게 소위 말하는 상고사 논쟁 아니냐는 얘기다. 위만조선 이전의 조선을 역사적 실체로 정립하고자 하는 삼조선론의 기반이랄 수 있는 ‘기자동래설’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사실 저자는 1980년대 ‘위대한 상고사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윤내현(단국대)의 직계 제자다. 스스로도 그 당시 분위기 속에서 “윤내현의 제자로서 누구보다도 ‘확대된 고조선사’ 연구에 환호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미국 시카고대 유학 과정, 귀국 뒤 단국대에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윤내현의 도움도 크게 받았다. 그럼에도 저자는 “윤내현의 학문과 인격을 누구보다 존경하지만, 외람되게도 그의 학설을 수용하기 어려워져 버렸다”고 못박았다. 왜 그런지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뼈대가 될 지도 모른다.
책 자체로도 이 책은 대단히 독특하다. 애당초 페이스북에 연재하던 글을 묶은 형식이라고는 하지만, 역사학계 안팎의 이야기들과 자신의 공부 과정을 소상히 밝혀두고 있다. 엄격한 사료 비판 중심의 연구를 강조하는 역사학자일수록 이런 책을 내놓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대가’라 불리는 이들의 ‘회고록’ 혹은 ‘비평집’ 정도인데, 이런 분위기에서 ‘50대 현역 연구자’가 이런 책을 내놓는다는 건 톡 깨놓고 얘기하자면 건방져 보일 수도 있다.
이 만용을 가능케 하는 건 무엇보다 저자가 단국대 출신이어서, 또 미국에 유학 가서 중국사를, 그것도 중국 고대사를 공부한 한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 철학계 슈퍼스타 중엔 묘하게도 변방 알제리 출신이 많다. 변방의 경계인이란, 위태로운 자리지만, 그렇기에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눈을 선물로 받는다. 그리고 그걸 정직하게 말하고자 하는 욕망까지도. 그게 축복일지, 저주가 될지는 동시대 사람들의 양식과 수준이 결정한다. 무엇보다 이 국뽕 역사의 시대에 “훌륭한 연구자가 쓴 베스트셀러는 존재하기 어렵다”고 한 말이 울림으로 남는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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