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잊어도 되지만, 그날 북한의 도발은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8월 4일 북한군의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 사건으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22) 하사가 지난 1년간의 소회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북한의 지뢰도발 사건이 발생한 지 꼭 1년만인 4일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 생태관광지원센터에서는 당시 수색작전에 투입됐던 장병 8명이 한자리에 모인 ‘리멤버 804’(8월 4일을 기억하라)행사가 열렸다. 당시 도발로 큰 부상을 입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하 하사와 김정원(24) 하사에게는 아픔을 딛고 다시금 군인으로서의 의기와 자신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하 하사는 “지난 1년간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멀리서 국민, 가까이에서는 부모님과 친형,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이 자리에 두발로 선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하 하사는 재활치료를 모두 마치고 지난달부터 국군수도병원에서 부상 장병들을 돕고 있다. 그는 “북한의 소행에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며 “최전방에서 싸우고 싶지만, 나처럼 부상당한 전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군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장애인올림픽 국가대표로 나가는 것도 생각 중이다.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한쪽 다리를 잃은 김 하사도 무척 건강한 모습이었다. 김 하사는 “고난과 좌절, 분노가 남았지만, 에너지로 승화시켜 이 자리에 섰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과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재활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자리에서 껑충 뛰며 재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던 김 하사는 현재 사이버사령부에서 근무 중이다.
이날 행사는 지난 1년간의 아픔을 극복해온 장병 가족들이 만나 서로를 격려한 자리이기도 했다. 행사장에 먼저 도착해 있던 하 하사의 모친 김문자 씨는 당시 작전에 투입된 장병들의 얼굴을 보자, 마치 내 아들을 만난 양 일일이 손을 잡고 안부를 물었다. 김씨는 당시 수색작전 팀장이었던 정교성 중사에게 “잘 지내지, 잘 지내야 해”라며 연신 정 중사의 어깨를 다독였다.
의무병으로 작전에 참여했던 박준호 예비역 병장에게도 “우리 그날을 잊지 말자, 꼭 성공해라”며 격려했다. 김씨는 지난 1년의 소회를 묻자 “벌써 1년이 됐다,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견뎌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하사의 여자친구 장재연씨도 이날 행사에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동네 소꿉친구로 20년 가까이 김 하사를 지켜봐 온 장씨는 “당시 정원씨가 병문안을 못 오게 했다”고 털어놨다. 한쪽 다리를 잃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여자친구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는지 김 하사는 병원에 오겠다는 장씨를 한동안 만나지 않았다. 도발 사건 나흘 만에야 병원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아무 말도 못 하는 김 하사에게 장씨는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다”라고 만 말했다고 한다.
이날 행사 마지막 순서로 당시 장병들이 지난 1년의 소회를 쪽지에 적어 게시판에 붙였다. 쪽지를 앞에 놓고 한참을 고민하던 김 하사는 이렇게 적었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호국하라.”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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