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요양시설ㆍ도서지역 대상 시범사업 대폭 확대
의사-환자 직접 원격의료 가능케 의료법 개정 추진
의사단체 “오진 위험에 동네의원 줄도산” 반대
정부가 다시 한 번 원격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다. 올해 하반기부터 노인요양시설을 중심으로 시범사업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의사가 원격 의료장비를 통해 직접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의료법을 개정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이다. 그러나 의료 사고, 소규모 병의원 폐업 등을 우려하는 의료계의 반대가 완강해 10년째 정체된 원격의료 정책에 진전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보건복지부는 4일 제3차 원격의료 시범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4월부터 노인요양시설, 도서벽지, 격오지 군부대, 교도소 등 의료 사각지대를 대상으로 범부처 차원에서 시행 중인 현행 시범사업의 규모를 하반기 확대하고, 베트남 등 동남아 3개국 재외국민 대상 해외 원격의료를 10월부터 시범 실시하는 것이 골자다. 특히 시범사업 대상 노인요양시설은 현행 6곳에서 간호사가 배치돼 원격의료가 가능한 시설 450곳으로 대폭 확대된다. 도서 지역은 11곳에서 20곳, 군부대는 40곳에서 63곳, 원양선박은 6척에서 14척으로 시범사업 대상이 각각 늘어난다.
앞서 복지부는 의사와 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다른 의료인(의사·간호사 등)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경우에 한해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있다. 예컨대 노인요양시설의 경우 시설에 근무하는 간호사가 환자 곁에 있어야 의사의 원격의료가 가능하며, 처방은 의사가 2주에 한 번 시설을 방문해 환자를 대면할 때만 가능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 환자간 원격의료가 허용돼야 취약계층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관련 산업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날 원격의료 시범사업 시설인 충남 서산시 서산효담요양원을 방문, 정부의 정책 의지를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시설 입주 노인들이 원격의료 서비스를 받는 모습을 참관한 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장애인 등 병원에 다니기 힘든 분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원격의료 서비스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재차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특히 의사들은 원격의료는 현행법상 의사-의료인에만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된 장비를 매개로 진료를 하다 보면 장비 결함 등에 따른 오진이나 의료정보 유출 위험이 상존하며 이로 인한 법적 책임을 의사가 지게 된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일부에선 의사 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되 처방이 따르는 ‘원격진료’ 대신 환자 상태를 체크하는 ‘원격모니터링’만 허용하는 절충안도 나오지만, 모니터링 또한 오진 문제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법 개정에 원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격의료가 환자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일으켜 동네 의원 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복지부는 의료법 개정안에 원격의료를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허용하고, 명백한 장비 결함 등으로 인한 의료사고에 대해선 의사 책임을 면책한다는 조항이 들어간 만큼 의사들의 우려가 과하다는 입장이다. 시범사업에 따른 만족도가 80~90% 수준으로 높은 점, 일본·독일 등 의료 선진국이 원격의료를 도입한 점도 복지부의 주요 논리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발은 이번에도 정부의 원격의료 활성화 정책에 큰 장벽이 될 전망이다. 10년 전인 2006년 마련된 의사 환자간 원격진료 시범사업 방안은 여태 시행되지 못하고 있고, 정부가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은 17~19대 국회 내내 상임위에도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