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 취업취약계층 5명 선발
1년간 임금 받으며 기술 배워
노령화된 성수동 수제화 거리엔
명맥 이어갈 젊은 인재들 수혈
“네가 자른 부분하고 선생님이 자른 데를 비교해 봐. 손목 스냅을 이용해야 한다니까.”
중년 강사가 어린 제자가 귀엽다는 듯 친근하게 어깨를 부딪는 시늉을 하며 핀잔을 준다. 제자는 “아, 여기가 제가 자른 부분인가요”하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4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IT종합센터 2층 한 쪽에 마련된 강의실. ‘서울 수제화 아카데미 제조기술자 교육과정’에 참여 중인 강사 박덕근(57)씨와 교육생 김태연(19)군은 개강 열흘여 만에 부쩍 친해진 모습이었다. 이날은 라스트(족형)에 패턴테이프를 붙여 스케치한 구두 패턴을 종이에 옮겨 붙이고 여성 하이힐 패턴 원본을 만드는 수업이 한창이었다. 김군을 비롯한 교육생 5명은 “지난주 처음 플랫슈즈 본 뜨는 과정을 배운 데 이어 두 번째라 그나마 덜 힘들다”며 구두 본을 정교하게 자르기 위해 부지런히 칼을 놀렸다.
도심 제조업 활성화를 주요 사업 중 하나로 추진 중인 서울시는 성수동 수제화 산업이 희망인 동시에 고민거리다. 실력 있는 장인이 모여 있어 성수동이 구두 생산 메카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젊은 인재가 유입되지 않아 업계 노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에 서울시는 저소득 취약계층에게 공공일자리를 제공하는 ‘뉴딜일자리 사업’과 도심 제조업 활성화 사업의 결합에 나섰다. 시는 지난달 25일 서울 거주 만 18세 이상 만 39세 이하 저소득 취업취약계층 청년을 선발해 수제화 제조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서울 수제화 아카데미 제조기술자 교육과정을 시작했다. 하루 8시간, 주 5일 참여하고 임금 형식으로 시급 6,200원(월 130만원)을 지원 받는 1년 코스(내년 6월 30일까지)다. 5명의 적은 인원으로 시작했지만 조만간 5명을 추가로 모집할 계획이다.
말하자면 시는 영국의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만든 ‘피프틴(Fifteen)’ 레스토랑 같은 사회 혁신을 추구하는 셈이다. 올리버는 불우 청소년 15명을 요리사로 훈련시켜 고용하는 레스토랑 피프틴을 통해 이들 불우 청소년의 자립을 돕고 있다.
아직 교육 초기지만 서울 수제화 아카데미 제조기술자 교육과정에서도 이 같은 희망적 성과를 기대해 볼 만한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2월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 후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 그간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던 김태연군은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군은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주변에 ‘아르바이트만 하지 말고 기술을 배우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도대체 무슨 기술을 배우라는 말인지 알 수 없어 듣기 싫었다”며 “수제화 제조 기술을 배워 보니 나의 세심한 성격과 잘 맞는 것 같아 앞으로 작은 가게를 차릴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쌓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덧붙였다. “전에는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는 김군은 “이제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족과 단란하게 사는 삶’이라는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숙련 기술자로 현업에서 활동하다 후진 양성의 뜻을 품고 이 교육과정에 합류한 강사들의 각오도 단단하다. 이들은 “교육생들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때문인지 정서적 안정감이 부족해 수업 진도를 빨리 나가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그래도 열정만큼은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
박덕근 강사는 “아무리 유명한 사업 아이템도 생산인력이 없으면 산업 발전이 어렵다”며 “이 아이들이 노령화된 수제화 산업의 명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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