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축구의 ‘무한도전’이 시작됐다. 공교롭게 첫 상대가 한국이다.
피지는 7인제 럭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두 차례 정상에 오른 럭비 강국이다. 럭비는 1924년 파리 대회 이후 92년 만에 리우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는데 피지는 이번에 메달까지 노리고 있다.
반면 피지의 축구는 변방 중의 변방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87위로 한국(48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행운이 뒤따랐다. 피지가 속한 오세아니아 대륙의 최강자는 뉴질랜드다. 2006년 호주가 오세아니아축구연맹(OFC)을 떠나 아시아축구연맹(AFC)에 편입한 뒤 뉴질랜드는 자연스럽게 ‘호랑이 없는 골에서 왕 노릇 하는 여우’가 됐다.
하지만 지난해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때 뉴질랜드는 바누아투와 준결승전에서 부정 선수를 출전시켜 몰수패를 당했다. 덕분에 피지가 결승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바누아투를 누르고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진출권을 땄다.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끈끈한 조직력으로 승부를 거는 팀이다.
한국과 피지는 5일 오전 8시(한국시간) 사우바도르 폰치노바 아레나에서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C조 1차전을 치른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한국의 낙승을 ‘확신’한다. 몇 골 차로 이기느냐가 관건이라고도 한다. 신태용(46)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지난 4월 리우에서 열린 남자축구 조 추첨식 때 피지 코치를 만난 적이 있다. 감독도 없이 관계자 한 명 대동하지 않고 달랑 코치 한 명만 참석한 모습이 안쓰러워 신 감독이 밥을 사주며 대화를 나눴다. 그 코치는 “우리(피지)는 그저 올림픽 참가에 의의를 둔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나친 겸손이거나 연막작전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다.
피지는 작년 뉴질랜드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에 출전해 남미의 온두라스를 3-0으로 완파했다. 비록 이후 2연패로 조별리그 탈락했지만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멤버가 이번 올림픽의 주축 선수들이다. 뉴질랜드 웰링턴 피닉스에서 뛰는 피지의 유일한 해외파 공격수 로이 크리샤(29)가 와일드카드로 가세해 전력이 더욱 강해졌다. 크리샤는 지금까지 A매치 27경기에 나서 19골을 기록 중이다. 피지는 지난 달 26일 올림픽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 말레이시아와 A매치 평가전에서 1-1로 비겨 만만찮은 전력을 과시했다. 호주 출신의 프랭크 파리나(52) 피지 감독은 “우리는 피지의 럭비 대표와 같이 세계 정상 팀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을 안다. 올림픽에서 가급적 많은 경험을 얻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어 “축구장 위에서는 때때로 이상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준비 상태에 따라 결과가 다를 것이다”고 각오를 다졌다.
신 감독도 방심을 경계했다. 그는 “피지는 약하지만 기술보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투박함이 있다”며 “피지가 수비 위주로 나온다는 가정 아래 선제골을 빨리 넣어야 좋은 경기내용을 보이고 다득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의 인구는 91만 명이고 면적은 1만8,333㎢로 한국의 경상북도와 비슷하다. 피지는 파푸아뉴기니, 키리바시, 투발루, 나우루 등 태평양 14개 도서국 중 ‘맏형’을 자처한다. 국제 외교 전문가들이 “유엔 총회 등 주요 국제기구에서 이뤄지는 투표에서 피지만 잡으면 14표를 확보하는 셈”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세계 수산물의 20% 이상이 이곳에서 나 한국도 피지를 원양어업의 전초기지 삼아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피지와 남북한 사이에 흥미로운 외교 역사도 있다. 피지는 한국과 1971년 1월, 북한과는 1974년 4월 외교를 맺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7년 KAL기 폭파사고가 터지자 북한과 수교를 단절했다. 2002년 12월에야 양국 관계는 복원됐다.
리우=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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