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골목이 많은 주택가에 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역시 경복궁이 가까운 동네에서 오래도록 살고 있다. 한때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산 적도 있으나 마당이 있는 집의 매력에 푹 빠진 뒤론 내내 그곳에서 살았다. 우리 동네처럼 세입자들이 점령하고 사는 허름한 동네와는 달리 집주인들이 정원을 가꾸며 여유롭게 사는 동네에서 터를 잡고 사는 동안 적잖은 환경의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집주인들이 살던 집을 헐고 빌라를 지어 분양하거나 세를 놓으면서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대거 나타났다는 것. 그리고 사람 좋아하는 그 친구에게 그들이 적잖은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 그녀는 “김치를 좀 주려고 하는데…” “시골에서 유기농으로 농사 지은 고구마가 와서 좀 나눠줄까 해” 하는 말에 진저리 치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들고 오는 쉬어터진 김치 한 종지에 몇십만 원을 지불해야 할지 알 수 없고, 고구마 또한 한 개에 몇 만원이 될지도 모른다고 투덜거렸다. 돈을 빌리려고 오면서 김치나 고구마 따위를 들고 온다는 설명이 곁들여지지 않았다면 나는 영영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목에서 손이 나온다’는 절박함이 담긴 말뜻을 알고 있는 나는 친구에게서도, 그녀의 돈을 빌리려는 자들에게서도 쓴맛을 느꼈다. 그건 그렇고, 내 친구는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다는 푸념을 했던 것일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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