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주일간 혼란 일단락
강경 방침 고수하던 최경희 총장
총동창회와 면담 후 철회로 선회
학생들 “후속처리 완료까지 농성”
2.돈줄 쥔 정부 입지 축소
지원 빌미로 대학 자율성 통제
도마 오른 교육부 정책 전환 계기
학벌주의 논란 등 파장 적잖을 듯
이화여대가 직장인 대상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을 결국 전면 백지화하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을 야기한 이번 사태는 학교 측의 백기투항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본연의 학문적 역할을 외면한 채 산업화ㆍ취업률 위주의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매몰된 대학 현실에 대한 반발이 폭발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대학 구조개혁의 방향을 선회할 것인지 주목된다.
이화여대는 3일 오전 긴급 교무회의를 열고 미래라이프대 설립 추진을 철회하기로 의결했다. 최경희 총장은 지난달 28일부터 본관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을 찾아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중시해 미래라이프대 설립을 철회하기로 했다”며 “앞으로 여러 일들을 학생들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또 ▦사업 전면폐지 약속 ▦교육부의 공식 공문 공개 ▦공권력 투입 사과 ▦시위 참여 관련자 불이익 배제 ▦학내 의사 시스템 개선 등 총학생회와 학생 측 요구 조건도 모두 수용했다.
전날까지 “적법 절차를 거친 사업안을 취소하는 것은 학교를 우습게 만드는 일”이라며 강경 방침을 고수하던 최 총장이 입장을 선회한 것은 여론이 악화하고 졸업생과 교수들까지 학생들의 반발 기류에 가세하면서 학교 이미지 실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전날 학교 운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총동창회 측이 최 총장과의 면담에서 사업 백지화를 적극 건의했다는 후문이다.
이로써 이화여대는 교육부의 ‘평생교육 단과대학(평단) 지원사업’ 대상에서 제외됐다. 교육부는 이날 “이화여대가 공문으로 제출한 평단 지원사업 철회 의사를 받아들이고 공석이 되는 1개 대학은 추진 일정 등을 고려해 추가 선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교 측과 학생들 간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달 28일 본관 점거 시위로 교수, 교직원 등 6명이 갇힌 사건과 관련, 경찰은 일부 농성 학생들에게 감금죄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미 피해자 진술을 받았고 감금죄는 반의사불벌죄나 친고죄가 아니어서 수사를 중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일단 요구 사안의 후속 처리가 완료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날 오후 8시로 예정됐던 졸업생들의 학내 시위도 계획대로 열렸다. 졸업생과 재학생 5,000여명은 교정에 모여 ‘공권력 투입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 ‘최경희 총장 사퇴’ 등을 요구했다.
당초 이번 사태는 학생들을 배제하고 평단 사업을 일방 추진한 학교 측에 대한 반감에서 촉발됐지만 ‘대학 본연의 역할’과 ‘학벌주의’ 등 여러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부가 주도해 온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PRIME), 대학인문역량강화(CORE)같은 단기 정책 설계에 학생들이 정책 수요자로서 눈을 부릅뜨고 감시를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대학 지원사업은 돈을 내세워 정부가 대학을 통제하고 학교는 정부정책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며 “대학의 자율성과 발전 전망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지원 방식이 대폭 바뀌지 않으면 상실된 정책의 권위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상황과 맞물려 어떤 식으로든 대학의 기능 조정은 필요한 만큼 장기적인 변화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사태 전개과정에서 학벌사회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는 모습이 포착됐다”며 “대학도 이제 다양한 연령층을 아울러야 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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