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8월 2일
1987년 8월 4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949년 제정한 방송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을 폐지했다. 방송의 공정성을 포기한 게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신장하기 위해서였다.
공정성 원칙은 41년의 ‘메이플라워 원칙(Mayflower Doctrine)을 승계한 거였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넌 이들의 뜻을 존중, 공적 현안에 대한 어떠한 견해도 방송국이 편집 권한으로 묵살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 요지였다. FCC가 49년 저 원칙을 폐기하고 공정성 원칙을 정한 이유는 방송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공정성 원칙은 방송이 공적 중요성을 지닌 논쟁적인 문제를 일정 비율 이상 다루되, 각 견해를 왜곡하지 않으면서(honest) 적정하고(equitable) 공평하게(balanced)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고 정했다.
40년대 말 미국의 전국 방송국은 단 세 곳(NBC, ABC, CBS)에 불과했다. 특정 방송이 특정 이념과 가치에 편향될 경우 영향력이 치명적일 수 있어 기계적인 중립과 공정성의 룰을 앞세워서라도 최악을 막자는 취지였다. 64년의 존 F. 케네디 등 언론 장악력에서 밀리던 대통령과 주지사 선거 입후보자들은 저 원칙을 내세워 사나운 방송에 재갈을 물리곤 했다.
공정성 원칙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공정보도 못지 않게 언론의 자유(수정헌법 제1조)가 중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기계적 중립과 산술적 균형에 넌더리를 내는 소비자들도 점차 늘어났고, 케이블 방송사와 공중파 채널이 많아지는 등 방송 환경도 급변했다. 레이건 2기 행정부 시절인 87년 FCC는 공정성 원칙을 폐기하며 3가지 이유를 들었다. 즉 방송이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을 기피함으로써 공익에 역행하는 부작용을 낳았고, 과도한 규제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으며, 다매체ㆍ채널 시대의 도래로 전파 희소성도 사라졌다는 거였다. 공정성 원칙의 폐기는 언론의 자유와 시청자의 알 권리 신장을 위한 조치였다.
한국에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와 별도로 2008년 ‘민간독립기구’로 출범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있다. 방심위가 법처럼 민간의 독립기구인지, 방송법 제1장 제6조(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1항의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관철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지 심의할 기구는 사실상 없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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