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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마루타 알바

입력
2016.08.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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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미국에는 매독 임질 등 성병이 만연했다. 미 공중보건국은 당시 신약이던 페니실린의 성병 치료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1946~48년 과테말라에서 마루타 실험을 진행했다. 성병에 걸린 성매매 여성들을 동원해 과테말라의 군인 죄수 등 1,600여명에게 성병을 몰래 감염시키는 방법을 썼다. 성병이 없는 성매매 여성의 자궁경부에 감염물질을 주입한 뒤 실험 대상자에게 접근시키거나 남성들의 몸에 직접 주사하기도 했다. 극비에 부쳐졌던 이 프로젝트는 2010년 자료를 입수한 미국의 여성학 교수에 의해 공개됐다.

▦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약물 임상시험 아르바이트인 ‘마루타 알바’가 유행이다. 특허 만료된 약품의 복제약이 본래 약과 효능이 같은지 검증하는 생물학적 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과 신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이 대상이다. 생동성시험은 2~4일 병상에 앉아 복제약을 먹은 참가자에게서 10~20여 차례 피를 뽑아 성분 농도를 측정한다. 약물 종류와 기간에 따라 30만~100만원을 준다. 대학생들 사이에선 편의점 알바로 한 달에 버는 돈을 단 며칠 만에 손에 쥘 수 있어 ‘꿀알바’로 통한다.

▦ 세상에 없던 약물이 인체에 쓰이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실제 천문학적 자금을 들여 개발한 신약도 임상시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 탓에 90% 넘게 중도 폐기된다.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가 1996년 나이지리아에서 진행한 항생제 임상시험에선 어린이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복제약 생동성시험은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낮긴 하나, 임상시험을 통과해 시판된 신약의 4%가 안전성 문제로 퇴출당하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 2011~13년 국내 임상시험 약물 피해자는 476명에 달한다.

▦ 한국은 글로벌 제약사가 없는데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임상시험을 많이 하는 국가다. 2000년 33건이던 임상시험 건수는 2014년 650건을 넘었다. 정부는 2020년까지 세계 5위의 임상시험 강국으로 올라선다는 계획이어서 마루타 알바가 더욱 성행할 우려가 크다. 임상시험에는 항상 큰 위험이 도사린다. 인체에 어떤 영향과 부작용을 미칠지 예측하기 어려운 탓이다. 다행히 최근 임상시험 지원자를 모집할 때 약물 위험성 등 정보를 공개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신체 안전을 시장논리에만 내맡겨선 안 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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