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의 미국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되면서 여성의 참정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144년 전 미국에서 처음으로 ‘유리천장’에 도전했던 여성 정치인 빅토리아 우드헐(1838~1927)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요당 후보로는 클린턴 후보가 처음으로 선출됐지만, 과거 미국 대선에 도전했던 여성은 40명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백악관의 문을 두드린 인물이 바로 1872년 대선에 출마했던 우드헐이다. 1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은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의 목표를 향해 클린턴에 앞서 험로를 개척했던 우드헐의 삶을 조명했다.
여성참정권 부여를 요구하며 사회운동을 벌였던 우드헐은 당시 소수정당인 ‘평등권당(Equal Rights Party)’의 대표로 대권에 도전했다. 뉴욕의 지식인 클럽을 운영하고 월스트리트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주식중개소를 개소하기도 했던 우드헐은 “여성의 사회적, 가정적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라고 선언하며 대선 후보로 나섰다.
미국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1920년보다 50여년이나 앞서 혁명을 부르짖었던 우드헐은 하지만 남성중심 사회와 이를 철통같이 지키는 방탄유리 천장에 부딪혀 좌절해야 했다. 노예 출신 민권운동가 프레드릭 더글라스를 러닝메이트로 해 선거에 나선 그는 단 한명의 선거인도 확보하지 못하고 패배했다. 더구나 선거 당일엔 경찰에 체포돼 대선 기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체포의 명분은 남성 유력 정치인들이 관련된 성 스캔들 폭로였지만 평소 진보적 정치성향을 눈엣가시로 여겼던 정치권이 저지른 일종의 정치탄압으로 보여진다는 게 정설이다. 선거 이후 우드헐의 득표수가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급진파’였던 우드헐은 여성 참정권 운동 외에도 당시 금기로 여겨졌던 자유연애를 주장해 미국 보수 정치인들로부터 ‘마귀 부인(Mrs. Satan)’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신재현 인턴기자(이화여대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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