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기차역 뒷골목, 한 뼘짜리 가게들이 즐비한 이 곳에 수상한 책방이 들어섰다. 좌우서가를 빼곡히 메운 책은 전부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00 살인사건’ ‘00 범죄현장’ 등 선혈이 낭자한 제목들 가운데 안경을 쓴 작은 체구의 여성이 앉아 있다. 지난달 5일 추리소설 전문서점 ‘미스터리 유니온’을 연 유수영씨다.
책방을 열기 전 유씨는 20년 넘게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서점 개업을 준비하다가 올해 초 직장을 그만두고 2월에 이 손바닥만한 가게를 발견해 계약했다. “이 자리가 원래 꽃집이었다고 해요. 제가 젊을 때만 해도 여긴 꽤 번화한 패션거리였어요. 그런데 몇 년 후 인터넷 쇼핑몰이 생기고 경기가 침체하면서 공실이 많이 생겼다는 기사를 접하고 이 부근을 집중적으로 탐색했어요. 서점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책만 팔아서는 임대료 감당 못한다는 얘기였거든요.”
5, 6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는 지금 국내에 나와 있는 추리, 미스터리 소설 1,600여권이 꽂혀 있다. 절판된 책과 헌 책은 일단 배제했지만 그래도 공간이 모자라 아래 책장 문을 뜯어내 매대로 개방해야 했다. “대형서점엔 베스트셀러 아니면 전시될 기회조차 없잖아요. 요즘엔 쾌적한 독서를 위해 앉는 장소를 늘리는 바람에 더 많은 책들이 창고로 들어가게 됐죠. 적어도 여기서는 모든 추리소설이 손님과 얼굴을 마주했으면 했어요.”
직장까지 관두고 추리소설 전문서점을 열 정도면 대단한 추리광이란 짐작이 나올 만 하다. 그러나 유씨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아요. 어릴 때 셜록 홈스 보면서 추리소설에 빠졌고 영화든 드라마든 추리가 들어간 장르를 즐겨 보는 정도예요. 서점을 열 때도 마니아들만 찾는 곳 보다는 일반인들에게 추리소설을 친근하게 소개하는 장소가 되길 바랐어요.”
유씨는 이를 위해 매달 테마를 선정해 작은 기획전을 열고 있다. 8월의 테마는 ‘맛에 관한 미스터리’다. 서가 한 켠엔 음식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들이 따로 전시돼 있다. 실제로 손님 중엔 추리소설광보다는 그냥 궁금해서 들어오는 이들이 더 많다고 한다. 뭐부터 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추천을 부탁하는 입문자들에게 책을 골라주는 게 유씨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고양이 좋아하는 분들에겐 야나기 고지의 ‘소세키 선생의 사건일지’를, 음식에 관심 많은 분들에겐 스탠리 엘린의 ‘특별 요리’를 권하는 식이에요. 한 번은 군대에서 읽은 추리소설인데 도저히 제목이 기억이 안 난다는 손님에게 책을 찾아 드린 적도 있어요.”
스스로 외향적인 성격이 못 된다는 유씨는, 그러나 커뮤니티 공간에 대한 생각도 조심스레 하고 있다. 인근의 시집전문서점 ‘위트앤시니컬’이나 북카페 ‘문학다방 봄봄’에서 시 낭독회를 열 듯 추리소설 독자와 작가, 번역가들을 연결하는 다양한 행사를 구상 중이다. 물론 자리가 잡히고 난 뒤의 일이다. 유씨는 한 달에 몇 권을 팔아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계산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국내의 작은 서점들 중 책만 팔아 유지되는 곳은 한 곳도 없어요. 이곳도 강연이든 아르바이트든 다른 일들을 병행해야 유지가 될 거예요. 다만 바라는 건 이 공간이 계속 저에게 행복이 되는 거예요. 서점을 준비할 때처럼요.”
글ㆍ사진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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