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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입력
2016.08.0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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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사태’라고도 한다. 지난달 31일 이화여대에는 비무장 상태의 학생들 200여명을 진압하러 경찰 1,600명이 출동했다. 행정력 낭비의 대표 사례로 손색이 없다. 당시 학생들은 이대 본관에 모여 ‘미래라이프대’에 반대하는 시위 중이었다. 이 사업은 직장인 대상 평생교육단과대학(평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고졸 여성들에게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표면상 취지와 달리 뷰티ㆍ웰니스 등 여성의 영역이란 고정관념이 퍼져있는 데에 전공을 제한한다. 학벌주의를 이용한 학위장사이며 여성 교육의 산실인 대학이 성 역할 고착에 앞장서는 꼴이다. 사업 진행 과정도 일방적이어서 학생들과의 소통 부재가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8월 3일 이화여대는 사업 철회를 발표했고 학생들은 공식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주시하고 있다.

이 시위는 많은 의미를 생산했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악의적으로 유통되는 ‘몰카’나 ‘이대 기사=악플’이라는 통념 때문에 평단 반대시위 참여 학생들에게는 마스크가 제공되고, 촬영이 제한된다. 이는 여성이 공적인 영역에 나설 때 사안과는 무관하게 인신공격에 노출되는 취약 계층임을 드러낸다. 또한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는 우리 사회가 이대생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관음과 호기심과 놀이의 대상으로 소비하는지 폭로한다. “이대 나온 여자라는 간판을 지키려는 엘리트주의, 이기적인 이대생” 등의 프레임은 흥행이 보장되기 때문에 마치 팝콘을 튀기는 것처럼 사태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다.

시위는 학생들이 사용하는 익명 커뮤니티에서 논의ㆍ추진된다. 소위 ‘주동자’나 ‘수뇌부’ 없는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형식 그 자체로, 시위 역사상 가장 특수하다. 경찰과 대치하자 소녀시대의 ‘다만세’를 부르고, 모여서 공부하고, 졸업생들이 취업 상담을 해주는 등 현장을 하나의 유의미한 ‘판’으로 만들어가는 양상도 흥미롭다. 2008년 경찰이 교내에 들어왔을 때 울기만 했던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가히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전법이다. 한편 ‘정치적이지 않은’ ‘순수한’ 학생임을 강조하며 운동권 학생을 배제하는 점은 비판받았다. 이것은 학교 측이 학생들의 시위를 ‘외부인’이나 ‘시민 단체’와 관련 있는 것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반대 의견을 불순 세력, ‘비-당사자’의 것으로 돌려 정당성을 박탈하는 방식은 유서 깊고 전형적이다. 순수성은 최후의 방패가 되고, ‘정치’는 특정 정당의 이익이나 개인의 정치적 커리어만을 의미한다. 그러나 ‘순수’는 결국 권력자나 가해자의 승인이 필요하다.

‘순수한 피해자’, ‘순수한 유족’ 등 무수히 반복되어온 변주이다. 학교가 인정한 학생 시위란, 사장님이 인정한 노조 같은 것인가. 순수하다는 승인이나 인정은 요구할 이유도 받을 필요도 없다.

학생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잘 안다. 너무나 불리한 싸움이기에 아주 작은 꼬투리도 잡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정치다. 정치일 수밖에 없다. 정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두 종류의 정치를 구별했다. 통념적 정치 활동은 기존 질서의 유지와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치안’의 정치이다. 이것이 학생들이 반대하는 용례이며 정당이나 투표, 또는 1,600명의 경찰병력이다. 다른 하나는 미학의 정치이다. 그것은 “어두운 삶(에서 새어 나오는) 소음으로밖에 자각되지 않았던 것을 담론으로 들리게 만”든다. 즉 특정 분배의 형식 속에서 이견을 제기하고 싸우는 모든 행위가 미학의 정치이다.

투쟁이나 정치는 ‘운동권’만의 특허가 아니라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매 순간 실천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배치하고 경찰을 불러 청소하려는 권력에 맞서는 모든 행위가, 지난하고 귀한 정치이다. 그리고 ‘실용주의’라는 거짓 깃발로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물결이 대학가를 뒤덮는 현실에서 생활과 학문 공동체를 지키려는 움직임은 특정 대학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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