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리듬체조를 시작한지 18년, 설렘이나 긴장감은 없다. 다만 후회 없는 피날레를 위해 손연재(22ㆍ연세대)의 머리 속엔 온통 ‘올림픽’이라는 세 글자뿐이다.
이번 대회 리듬체조 개인전은 월드컵, 세계선수권과는 달리 종목별 결선 없이 개인종합 경기만 열린다. 때문에 개인전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따낼 수 있는 메달은 색깔만 다른 단 하나다. 국제체조연맹(FIG)이 도핑 스캔들에 휩싸인 러시아의 체조 종목 출전을 허가하면서 잠시 상상했던 금메달은 어려워졌지만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의 꿈은 유효하다. 세계 리듬체조의‘투톱’ 야나 쿠드랍체바(19), 마르가리타 마문(21ㆍ이상 러시아)이 이변이 없는 한, 금ㆍ은메달을 나눠 갖는다고 볼 때 동메달을 놓고 손연재와 안나 리자트디노바(23ㆍ우크라이나)가 또 한번 숙명의 대결을 벌일 것을 보인다.
올 시즌 FIG 주관 월드컵 대회 기준으로 개인종합 최고점은 리자트디노바(75.150점)가 손연재(74.900점)를 조금 앞서 있는데 둘 모두 최근 상승세를 타고있다. 손연재는 첫 월드컵 대회인 에스포(73.550점)를 시작으로 리스본(72.300점), 페사로(73.900점), 소피아(74.200점), 과달라하라(74.650점)에 이어 마지막 카잔(74.900점) 월드컵까지 거의 매 대회 개인 최고점을 새로 썼다. 특히 지난 시즌 18.5점대를 한 번도 넘어서지 못했던 손연재는 올 시즌에는 최대 18.900점까지 찍었다. 지난 5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는 전관왕에 오르며 아시아에서는 더 이상 적수가 없음을 확인했다.
손연재는 그러나 월드컵 대회에서 리자트디노바에게 1승4패로 뒤졌다. 리자트디노바 역시 이번 대회가 선수 인생에서 마지막 올림픽이다. 또 손연재처럼 우크라이나에서 국민적인 사랑과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크림반도 사태로 러시아와 앙숙이 된 우크라이나 선수로서 세계 리듬체조 최강국 러시아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민 리자트디노바가 자국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그만큼 특별하다. 손연재가 ‘리듬체조 요정’이라면 리자트디노바는 ‘리듬체조의 교과서’라 불릴 만큼 정확하고 선 굵은 연기가 특징이다.
결국 실수 여부가 메달의 주인공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처럼 심리적 부담감이 큰 대회일수록 크고 작은 실수로 인한 변수는 많다. 손연재가 지난해 겨우내 체력 훈련을 어느 때보다 열심히 소화한 것도, 올림픽 직전에 열린 올 시즌 마지막 월드컵까지 불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체력이 뒷받침돼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난도도 무리해서 높이기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완벽하게 해내기로 했다. 손연재는 리우 올림픽에 대비해 자신의 장기인 회전 난도에 속한 포에테 피봇(한쪽 다리를 축으로 삼아 다른 쪽 다리를 돌려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기술)을 모든 종목에 넣었다. 특히 점수를 높이기 위해 다리를 접고 회전하던 기존 동작(0.1점)이 아니라 다리를 쭉 편 채 회전하는 동작(0.2점)으로 진화했고, 더 많은 댄싱 스텝을 추가해 표현력을 살렸다. 손연재는 “그 동안 해 왔던 것을 얼만큼 제대로 해 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된 리듬체조는 유럽 선수들의 텃밭이었다. 2012 런던 대회까지 총 39개의 메달 중 37개를 유럽이 가져갔다. 나머지 2개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중국계 캐나다 선수 로리 펑이 따낸 개인종합 금메달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단체전에서 중국 대표팀이 수확한 은메달이었다. 특히 러시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4회 연속 리듬체조 개인종합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며 세계최강국임을 입증했다. 현재 개인종합 세계랭킹 1~3위도 전부 러시아 선수다. 공동 1위 야나 쿠드랍체바ㆍ마르가리타 마문(이상 115점), 3위 알렉산드라 솔다토바(110점)가 차례로 이름을 올렸다. 손연재가 5위, 리자트디노바가 4위다.
4년 전 런던 올림픽에서 5위를 차지한 손연재는 “4종목을 1종목인 것처럼 생각하고 후회 없는 연기를 펼치도록 노력하겠다.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달 28일 상파울루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손연재는 15일 리우올림픽 선수촌에 입촌한 뒤 19일 메달 사냥에 나선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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